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6월 2일] <1712> 서베이어 1호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6월 2일] 서베이어 1호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966년 6월2일 국제표준시 오전6시17분 37초, 미국의 무인 탐사선 서베이어 1호가(Surveyor 1)가 달에 내려앉았다. 달 탐사선 발사 9번째 만의 성공. 비록 인공위성, 유인 우주선에 이어 달 착륙에서도 소련의 루나 9호보다 4개월 늦었지만 내용은 알찼다. 탐사선의 착륙 중량부터 292㎏로 루나 9호의 99㎏보다 무거웠다. 착륙 후 3일간 작동하며 수십장의 사진을 전송했던 루나 9호와 달리 서베이어 1호는 43일 동안 1만1,237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서베이어 1호가 미소 우주경쟁의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은 이후의 성과가 말해준다. 1968년까지 달로 보내진 후속 서베이어 탐사선 7대 가운데 5대가 성공을 거뒀다. 서베이어 6호는 달에 내린 후 이륙, 장소를 변경해 다시 착륙하는 실험도 치러냈다.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유인탐사계획을 서둘러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성공시켰다. 소련도 1970년께 우주인을 달로 보낼 계획이었으나 실행하지 못한 채 뜻을 접고 말았다. 소련은 왜 추월당했을까. 돈에 밀려서다. 비밀이 해제된 미 중앙정보부(CIA) 보고서에 따르면 1959년부터 1965년까지 7년 동안 소련의 우주개발 예산은 미국의 45.4%에 머물렀다. 미국은 1965년과 1966년 연방예산의 5.3~5.5%를 우주개발에 퍼부어 소련을 따돌렸다. 한동안 시들했던 달 탐사경쟁이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일본과 중국이 2007년 달 탐사위성을 발사하고 인도의 찬드라얀 1호는 2008년 달에서 물의 존재를 찾아냈다. 한국은 2020년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미국도 달에 영구기지를 건설할 생각이나 연방예산에서 우주개발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0.52%로 떨어진 상태에서 돈이 받쳐줄지 의문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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