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8월 26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공무원은 절대로 미리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은 민간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 공무원의 생리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30년 가까이 공직 생활을 했던 그는 자신도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큰일이 예상되지만 선제적 대응으로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보다는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그때 가서 대책을 마는 게 훨씬 더 ‘안전 빵’이라는 것이다.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 본들 알아주는 상사도 없을 뿐더러 표시도 안 나는데 굳이 먼저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몸에 베였다고 했다. 정부가 8ㆍ21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친 대책 발표로 시장은 실망했고 당일 건설업종 주가는 폭락했다. 시장을 정상화하는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규제와 세제 완화책은 외면한 채 생뚱맞게 공급위주의 대책을 내놓았으니 오진단에 오처방전을 내린 격이다. 현재 국내 부동산 시장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분양 물량이 국토해양부 통계상으로는 13만여가구, 실제는 25만가구를 훨씬 넘는다. 한채당 평균 2억원씩만 쳐도 50조원에 달하는 돈이 묶여 있는 셈이다. 건설업체는 돈줄이 마를 수 밖에 없고 부도설의 공포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내 발등에 불이 몸 전체로 옮겨 붙을 위험한 지경이다 둘째는 거래 실종이다. 순환해야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 뿐 아니라 시장경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부동산 시장은 막혀도 단단히 막혀있다. 집을 사거나 팔고 싶어도 각종 금융규제나 세제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셋째는 신규 주택 공급 부족으로 2~3년 후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상승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당연히 부동산 경기 둔화가 심화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특히 우리경제에서 차지하는 건설업의 비중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 거시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실제 중견 건설업체들의 어려움은 도를 넘어서 심각한 상황이다. 이미 지난 상반기 하루 한 개 꼴로 건설업체가 문을 닫은 데 이어 최근 들으면 알만한 상장 중견건설업체들 조차 부도설에 휩싸이거나 매물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신빙성 있게 나돈다. 한 건설업체 사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지금 부동산 시장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속칭 노가다(건설현장 일용직 잡부)가 이력서 들고 다닌다면 믿겠습니까” 일감이 없다 보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주머니에 이력서를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어떤 공사현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내세우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임 또한 못이나 빼고 자재나 나르는 허드렛일 인부의 일당이 9만원에서 6만원으로 내렸는데도 그 일이라도 하겠다고 아우성이라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에서는 그나마 찔끔찔끔 내놓고 있는 부동산 대책이 건설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강남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실제 죽어나는 것은 저소득층들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건설경기는 암에 걸려 조만간 온 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감기약 정도로 치료를 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기를 놓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물론 섣불리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가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또 들썩거릴까 봐 두려워 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는 데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암에 걸렸을 경우 항암제는 암세포 뿐 아니라 멀쩡한 정상세포에 대해서도 공격을 해 신체 기능을 떨어뜨린다. 그렇다고 부작용이 무서워 근본적인 치료를 외면한다면 암세포는 점점 더 몸 속에서 자라 결국에는 몸 전체를 망가뜨리고 만다.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뒷북 행정은 이제 지겹다. 뒤늦게 호들갑 떨지 말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선제적 부동산 대책이 시급하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