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동남아 태평양지역 담당 사장으로 싱가포르에서 근무 할 때의 일이다.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의 방문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차가 고장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드니 출장 중이던 나는 비서에게 일행이 많은 만큼 좋은 `큰 차(Big Car)` 한 대를 포함, 3대의 렌터카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뒤 부랴부랴 돌아와 이튿날 새벽 공항에 나갔다.
제프리 회장과 함께 준비됐다는 큰 차 기사를 따라 갔더니 버스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큰 차를 준비하라고 했더니…” 하며 당혹스러워 하는 나를 보며 제프리는 미소를 띤 채 “진짜 큰 차 아닌가”하고 농담을 했다.
제프리 회장과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제프리는 나를 볼 때마다 “CW(채욱의 이니셜), Big Car?” 하며 농담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른 나를 매출이 30억 달러 이상 규모인 한국GE 사장으로 발탁했다.
만일 우리나라 그룹 회장이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떤 결과가 났을까. 방문 기간 중 제프리는 엄청나게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고객을 만나고 직원들을 격려하며 업무를 상세히 점검했다. 미래의 젊은 인재들과 만남도 잊지 않고 떠났다.
그에게 내 실수는 작은 것이었다. 그에겐 고객들과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열정을 가지고 더 높은 가능성에 도전하는 직원들이 중요했다. GE에선 단순한 프로토콜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은 경영자원의 낭비라고 여긴다. 물론 국가원수를 예방한다든지, 주요고객과의 면담 등에는 만전을 기한다.
우린 가끔 정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바꿔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성과를 잘 내고도 최고 경영자의 마음에 안 든다고 나쁜 평가를 받는가 하면 업적은 좋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 부분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비단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노사ㆍ교육ㆍ정치권 등의 문제에도 해당된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전체를 보고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서민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적 행위, 여야가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당리 당략에 매달리는 일, 학생을 볼모로 삼는 한심한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하찮은 일인지, 그래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다. 나는 과연 어떠한가.
<이채욱 GE코리아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