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5일] 키플링 & 백인의 책무


‘백인의 책무를 다하라/반은 악마, 반은 어린애 같은/당신들의 새 백성을 위해/무거운 갑옷을 입고 가라.’ 영국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 1899년 2월5일 발표한 시 ‘백인의 책무(The White Man's Burden)’의 일부다. 시는 편견으로 가득하다. ‘반은 악마, 반은 어린애 같은 새 백성’은 비서구인을 지칭하니까. 19세기 말 제국주의자들의 정서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반영한 문학작품도 흔하지 않다. 서구인들에게는 ‘야만족인 비서구인’을 문명개화로 이끌어야 할 역사적인 소명이 있다고 믿은 키플링은 훗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 시를 헌정하며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에 박수를 보냈다. 백인이 북미 신대륙을 지배해야 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론과 맞물린 키플링의 시는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영토를 늘리고 얼마 남지 않은 인디언을 학살한 미국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도 일조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자로 자라난 키플링의 초기 저작도 대부분 인도와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영국군의 용맹성을 소개한 것이다. ‘애국시인’으로 대접 받은 것도 이 덕분이다. 키플링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는 국내에 널리 소개된 인물. 만화영화로 수없이 제작된 ‘정글 북’의 작자가 바로 키플링이다. 그의 인식에서 비서구인은 늑대에게 키워진 인간 소년 ‘모글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한 동물과 다름없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1907년)한 뒤부터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던 키플링은 1936년 71세로 사망했지만 그가 품었던 근거 없는 우월감은 무덤에 묻히지 않은 채 아직까지 퍼렇게 살아 있다. 서구문명을 찬양하고 빌붙으려는 ‘식민지 근성’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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