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 수사를 보는 해외시선

삼성전기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단행된 지난 24일 오후. A그룹의 한 중역은 문득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던 2000년 8월을 떠올렸다. 당시 한 현지 신문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었던 이 그룹 총수의 방문 사진을 실으면서 사진설명 말미에 `스캔들에 휘말린`이란 표현을 집어 넣었다. 이 신문이 언급한 `스캔들`은 다름 아닌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 국가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게 했던 비자금 사건. 내로라 하는 한국의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을 목도했던 해외언론들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여과 없이 들춰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03년 겨울. 검찰은 정치자금 투명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한국의 대표 기업들에게 가차 없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삼성과 LG의 계열사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다른 기업들도 책상 서랍을 비워둔 채 검찰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검찰의 칼끝은 총수들의 목줄기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기업들에게서 `경영`이란 단어를 찾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가끔씩은 검찰 수사의 강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엄살을 떠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가져보지만, 기업 현장을 둘러보면 속된 말로 죽을 맛이라는 그들의 말이 실감난다. `아노미`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기업의 모습은 어떨까. 최근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을 돌아온 삼성전자와 LG전자의 IR팀원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둘렀다. “(비자금과 카드 문제가)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아무리 외쳐 보았지만 도대체가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 기채 시장은 냉혹하리만치 썰렁해졌다. 우리 사회가 투명성을 찾고자 몸부림을 치는 사이, 기업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신인도는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침식돼 가고 있다. 다시 3년이 흐른 후 외국 언론들은 우리의 기업인을 어떻게 묘사할까. 투명성을 위해 헌신한 `유리알 메이커`, 아니면 `별을 하나 더 붙인 스캔들 메이커`? 우리 기업들이 반복되는 사정의 사슬 속에서 또 생채기만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김영기 (산업부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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