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위법행위를 한 비상장 계열회사 임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식 ‘이중대표소송제’를 새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 장관은 이날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우리 경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장기적인 성장 모멘텀을 찾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비상장회사의 경영진과 임원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상장 모회사의 주주들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천 장관은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인 주주들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지 않고 오너 2세에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시키는 구시대적인 행태는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비상장회사를 통한 경영권 상속 행위를 차단하는 장치로 활용될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됐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상법을 개정해 또 다른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중대표소송제도는 비상장 자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해 상장 모회사의 주주들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만약 비상장계열회사의 경영진이 편법ㆍ위법행위를 통해 해당 회사의 기업에 손실을 입힐 경우 상장계열사의 주주들이 대표소송을 통해 비상장계열사의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 그동안 참여연대에서는 삼성에버랜드를 이용한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상속 등의 사례를 지적하며 이 제도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제에서는 자회사인 에버랜드의 경영진이 회사 재산에 손실을 입혀가며 총수의 상속을 거들었다 하더라도 모회사인 삼성물산 등의 주주들이 에버랜드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거래를 무효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이에 따라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재계에 적지않은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찬성론 못지않게 신중론도 있다. 이중대표소송제도가 회사의 독립적 법인격을 전제하는 현행 상법구조와 충돌하고, 또 지배회사의 이사에 대한 종래의 주주대표소송, 즉 단순대표소송(single derivative suit)만으로 종속회사에 대한 감시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법원은 이중대표소송을 허용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2003년 8월)을 뒤집어 “지배회사의 주주는 이른바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례도 있다. 반면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심포지엄에 참석, “한 재벌 계열회사의 주주는 그 계열회사가 출자한 다른 계열회사에 대해서도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중대표소송제도는 소액주주 보호와 다른 계열회사의 경영진도 견제하는 제도”라며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출총제나 지주회사제도 등 사전적 출자규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