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거인에게 길을 묻다] "얘기해봐라" 한마디 후 듣기만…

설명 미흡땐 만족할 때까지 퇴짜<br>■ 내가 모셨던 호암- 안시환 前 삼성전자 사장<br>상대방 말 열심히 듣는 '경청형 CEO'<br>일 맡긴 사람에겐 확실하게 힘 실어줘

안시환

SetSectionName(); [거인에게 길을 묻다] "얘기해봐라" 한마디 후 듣기만… 설명 미흡땐 만족할 때까지 퇴짜■ 내가 모셨던 호암- 안시환 前 삼성전자 사장상대방 말 열심히 듣는 '경청형 CEO'일 맡긴 사람에겐 확실하게 힘 실어줘 노희영기자 nevermind@sed.co.kr 안시환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얘기 해 봐라." 호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안시환(사진ㆍ70) 전 삼성전자 사장을 불러 이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안 전 사장은 "회장님 호출을 받으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면서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하신지 사장이 되어서도 회장님 앞에만 가면 떨리더라"라고 회고했다. 안 전 사장은 "나에게 너무나 크신 어른이자 스승인 이 회장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다른 경영인들이나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며 입을 열었다. 당시 호암은 사장이 회장에게 보고할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얘기해봐라"라는 한 마디로 대신했다. 설명이 끝날 때까지 호암은 듣기만 했다. 마음에 들면 "더 적극적으로 하면 되겠다"고 했다. 'A+'다. "그래, 그리 해 봐"라고 하면 'A', 여기까지 오케이(OK)다. 묵묵부답이거나 "그리 안 될 거 같다"면 낙제다. 안 전 사장은 "이 회장님은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경청형 CEO'였다"면서 "하지만 설명이 불충분하면 만족스러운 답이 나올 때까지 퇴짜를 놓으셨다"고 말했다. 한번은 신규 사업 추진과 관련해 보고를 하러 갔다가 10번이나 퇴짜를 맞은 적도 있었다. 다시고쳐 들고 가도 번번이 되돌아 나와야 했다. 안 전 사장은 "무엇이 잘못됐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문제점이 보였다"면서 "11번째 보고를 통과한 다음에 앞서 보고했던 내용을 되짚어 보니 그대로 추진했었다간 큰 일 났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임직원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고 개선하게끔 한 것이 바로 호암의 인재 육성 방식이었다. 새로운 일에 착수할 때면 이에 앞서 철저하게 따지고 해외 사례까지 검토하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합리를 추구하던 그의 경영방식이다. 하지만 한번 결정된 사안은 과감히 추진하도록 박차를 가했다. 안 전 사장은 "회장님은 사장들이 세계 시장을 미리 읽고 기술 개발을 통한 선점 전략과 비전을 수립하지 않고는 자리를 지킬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리 해 봐라"며 믿고 일을 맡긴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힘을 실어줬다. 안 전 사장은 "나를 믿고 맡겼기 때문에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힘이 들어도 신명 나게 일했다"면서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고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업을 위해 팀을 구성할 때 호암의 용병술과 인재를 파악하는 혜안은 더욱 빛을 발했다. 개개인의 장ㆍ단점을 살펴보고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한 것. 최상의 팀 워크를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정예 '드림 팀(Dream Team)'을 만들었다. 호암은 기업가였지만 돈벌이에 급급해 쉬운 사업만 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 금리가 16~18%에 달하는 고금리 시기라 돈만 있으면 다들 단자회사를 차렸지만 호암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에서 부실 단자회사를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도 거절했다. 안 전 사장은 "회장님은 외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을 만들어 로열티를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본인의 할 일이라고 하셨다"면서 "돈 많이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인의 의무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호암의 '기업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솔선수범'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는 호암의 모습도 기억했다. 호암은 또 도전 의욕을 상실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직원을 싫어했다고 한다. 안 전 사장은 "회장님은 항상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긴장할 것을 강조하셨다"면서 "창조경영이나 구조개혁을 1960년대부터 강조하셨고 삼성 임직원들은 이미 이를 실천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호암과 같은 훌륭한 어른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큰 행운이었다"면서 "그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맺었다. ◇안시환 전 사장은 = 지난 1964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모직,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임원을 맡았다. 1987년 호암이 세상을 뜰 당시 삼성전자 사장을 맡고 있었으며, 1993년 삼성항공 사장을 마지막으로 삼성을 떠났다. 지난해 말까지 안진회계법인의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경제 대부' 거인에게 길을 묻다] 기획·연재기사 전체보기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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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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