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3일] 알렉산더 G 벨

전화 발명자는 누구일까. 대부분 알렉산더 G 벨이라고 답하지만 아니다. 독일인 필립 라이스의 전화 발명이 벨보다 15년 앞선다. 그리스어 ‘tele(원격)’와 ‘phone(음성)’을 합성해 ‘텔레폰(telephone)’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도 라이스다. 특허신청이 2시간 늦는 통에 ‘전화의 발명자’라는 영예를 놓친 미국인 그레이가 만든 전화기는 벨의 제품보다 성능이 훨씬 좋았다. 후발주자에 품질까지 떨어졌음에도 벨은 전화의 아버지로 기억된다. 그가 설립한 전화회사는 알짜 거대기업 AT&T와 루슨트테크놀로지사로 남아 있다. 벨의 성공요인은 추진력과 미래에 대한 통찰. 라이스는 사업화를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고 당대 최고의 전신 전문가였던 그레이에게 전화는 무선전신의 부수물이었을 뿐이다. 반면 전화의 시대를 확신한 벨은 전화기 개량에 온 힘을 쏟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전화회사까지 차렸다. 당시로서는 모험 중의 모험. 전화를 처음 접한 헤이스 대통령이 ‘놀랍지만 누가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을 사겠냐’고 반문하던 시대였다. 모험은 대박을 낳았다. 거부의 대열에 오른 벨은 축음기 개량과 비행기 연구, 과학전문 ‘사이언스’지 창간 등의 업적을 쌓았다. 무엇보다 애착을 보인 분야는 농아교육. 1847년 3월3일 그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 A M 벨이 시화법(視話法)을 개발해냈을 만큼 청각장애 연구는 가업이었다. 의학을 공부한 벨이 전화기를 만든 것도 농아를 위한 음성학 연구의 소산이다. 농아학교 교사 시절에는 여섯살짜리 헬렌 켈러를 가르친 적도 있다. 1922년 8월22일 벨이 사망했을 때 미국 전역의 전화 시스템은 1분간 침묵에 빠졌다. 인간을 사랑한 발명가 벨을 애도하기 위해서다. /권홍우ㆍ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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