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발자취] 기획원 등서 잔뼈굵은 경제통

장승우 장관은 엘리트 경제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중장기 경제계획입안에 3차례나 참여했고, 토지공개념 도입, 금융실명제 실시 등 굵직한 경제정책 수립과정에도 참여했다.정책입안과 기획전문가면서도 예산과 공정거래, 통계, 금융 등의 분야에도 해박하다. 국제업무에도 남다르다. 장 장관에 대한 안팎의 평은 '외유내강'형. 부하직원들에게도 명령하기 보다는 토론을 통해 일을 추진하되, 주로 듣는 편이다. 장 장관을 두고 한결같이 '합리적인 균형감각을 갖춘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급해도 서둘지 않지만 목표는 이뤄내는 강점도 갖고 있다. 장 장관의 업무처리를 설명해주는 일화 하나. 지난 86년8월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이 발생하자 대통령은 부실 건설공사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심사분석 총괄과장으로 재직중인 업무를 떠맡게 된 그는 정부 각 부처에서 인원을 뽑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4개월 작업 끝에 부실공사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당시 만들었던 대책은 지금도 건설현장과 관계부처에서 안전 공사의 바이블로 통한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태스크포스팀 구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상. 여러 부처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인력이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장 장관 특유의 온화하면서 합리적인 성품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누구에게나 호감과 신뢰감을 심어주는 스타일은 경제현안에 대한 부처간 이견을 조정해 내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91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던 당시 입장이 엇갈리던 정부 부처끼리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때도 그는 특유의 조정 능력을 발휘해 상황을 풀었다.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부임한 이후 장 장관은 이전보다도 더 눈과 귀를 열고 있다. 예산사업 현장을 뛰어다니며 애로사항을 직접 들으려고 다닌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예산증액 요구가 있어도 장 장관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또 확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48년 광주 출생 ▦66년 경기고 졸업 ▦70년 서울대 상대 졸업, 행시 7회 합격 ▦77년 청와대 비서실 경제비서관 ▦87년 경제기획원 종합기획과장 ▦88년 경제기획원 공보관 ▦92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94년 국회예결위 수석전문위원 ▦95년 재정경제원 제1차관보 ▦96년 통계청장ㆍ해양수산부 차관 ▦98년 금융통화위원회 상임위원 ▦02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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