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베이버부머 퇴장 쇼크] "남은건 집 한채·국민연금뿐…"

은퇴하려니 막막<br>아이들 교육시키고 살기 바빠 퇴직 코앞인데 노후 대비 못해<br>연금 수령 5~10년후에나 가능 그동안 어떻게 살아갈지 답답

퇴근길. 누구는 족한 얼굴로 제 살붙이를 보러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하고 누구는 설렘을 안고 또 누군가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긴다. 퇴근길 시민들의 긴 그림자가 준비 안 된 노후를 향해 걷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의 모습처럼 불안하게 흔들린다. /서울경제사진DB

올해부터 9년 동안 712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를 한다. 이들이 은퇴할 경우 한국은 생산인구가 급감하고 부양인구는 급증하는 비상사태를 맞게 된다. 사회 유지 시스템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 살고 있는 집 한 채와 국민연금에 의존하며 노후를 지내야 한다. 준비 안 된 퇴직이 몰고 올 사회ㆍ경제적 충격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이를 막거나 늦추기 위해 이들의 정년을 연장할 경우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88만원세대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과 함께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베이비붐세대의 은퇴 충격과 대책을 심층 조명해본다. "자식들 교육비 대느라 은퇴자금 마련은 꿈도 못 꿨습니다." 국내 한 문구 제조업체에서 23년간 일해온 김모씨는 "올해 53세로 정년퇴직이 2년 남았지만 퇴직 이후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가 오는 2012년 은퇴하게 될 경우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퇴직금 8,000만여원이 전부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학원생과 대학생인 두 자녀의 학비를 대느라 진 빚과 주택을 구입하면서 은행에서 대출한 돈을 제외하면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게다가 김씨는 따로 개인연금 저축도 가입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국민연금만이 유일한 노후 소득원이지만 연금을 수령하려면 퇴직하고도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연금 수령이 65세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씨와 같이 우리나라의 베이비붐세대들은 대개가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매달리다가 자신들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씨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빈 껍데기'에 비유했다. "남들보다 좀 늦게 서른이 다 돼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시작이 늦은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을 해왔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남은 게 없네요. 은행 빚을 끼고 구입한 집 한 채를 빼면 말이죠. 빈 껍데기가 된 것 같아요." 3년 전 명예퇴직을 하고 퇴직금을 전부 투자해 서울 양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는 1955년생으로 베이비부머의 맨 윗세대다. 그는 중견 이민ㆍ유학 알선업체에서 일하다 2007년 회사가 경영난에 시달리며 인원을 감축할 때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박씨는 퇴직 이후 의욕적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만 매출이 기대했던 만큼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그가 프랜차이즈 비용, 기계 설치, 인테리어 비용 등 매장을 차리기 위해 쓴 돈은 6,000만원에 이르지만 여전히 투자비용을 회수하기까지는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매달 200만원씩 나가는 건물 임대료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의욕만 앞세웠던 것 같아요. 20년 넘게 봉급생활만 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측면도 있고요." 박씨는 자신이 투자한 돈이 아까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56년생 권모씨는 언뜻 보면 뭐하나 남부러울 게 없다. 그는 노동부 산하 모 공단에서 30년째 근무하며 지난해에는 승진까지 했다. 아직 정년까지는 5년이나 남았다. 부인은 몇 년 전 노후를 준비한다고 작은 세탁소를 하나 내 몇 푼 되지는 않지만 가계를 돕고 있고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조금 있으면 사회에 나가 제 밥벌이를 할 것이다. 자신과 가족이 큰 탈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런 권씨에게 올 들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지난해 말 고향 송년모임에서 친구가 고물상 사업을 권유하면서부터다. "꼭 고물상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은퇴 이후를 생각해봤죠. 지난번 인사에서 나야 승진했지만 강등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을 보니 마음이 뒤숭숭해졌어요. 민간기업이면 나가야 할 때잖아요." 진지하게 은퇴를 생각해본 권씨는 막막했다. 4억원짜리 집 한 채를 빼면 1억원을 들여 사놓은 5평짜리 오피스텔과 국민연금이 전부였다. 퇴직금은 이미 정산한 뒤라 얼마 되지 않는다. "집사람이 힘들어 해 세탁소 일을 언제 그만둘지 모르죠. 조금 뒤에 아이들이 결혼하면 뭉칫돈이 필요하죠. 할 줄 아는 것은 없죠. 그냥 세상 사는 게 막연해졌습니다." 1960년생 서모씨는 지난해 말 KT에서 퇴직한 뒤 요즘 자전거 관련 창업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정년까지 다닐 수 있었지만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나왔다. 그는 자전거 점포 자동화 쪽으로 특허도 가지고 있고 가족의 격려 속에 창업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만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나름대로 준비는 해왔지만 막상 24년 다닌 회사를 나와 혼자 뭘 해보려니 솔직히 두렵습니다. 지금 제일 아쉬운 것은 창업자금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학자금과 노후 때문에 퇴직금만은 꼭 지키고 싶거든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부머들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 제대로 노후 준비를 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막연히 불안해하며 은퇴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삼성생명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부부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평균 월 211만원 다. 이 정도를 준비한 사람은 34%에 불과했으며 66%는 부족하다고 답했다. 현재 준비한 노후자금은 평균 월 145만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균 월 60만원 정도를 추가로 모아야 한다. 이처럼 노후 준비가 돼있지 않고 준비할 생각도 별로 하지 못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들이 아이들 공부시키고 집 한 채 마련하느라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철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는 아이의 봉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이며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라며 "준비 없는 베이비부머에게 은퇴 이후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5~10년 정도를 어떻게 경제적으로 해결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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