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19일] 필리핀해 해전


일본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적을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다. 1944년 6월19일 오전8시25분, 일본 연합함대는 1차 공격대로 함재기 64대를 발진시켰다. 목표는 약 400㎞ 떨어진 사이판 해역의 미 해군 제5함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일본은 750여대의 공격기를 날렸다. 사상 최대 규모의 항공모함 간 전투로 꼽히는 필리핀해 해전의 결과는 일본의 처참한 패배. 항공모함 3척과 유조선 2척이 가라앉고 6척의 전투함이 대파되는 피해를 당했다. 항공기도 600대 이상 떨어졌다. 패배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도조 내각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사이판 섬을 확보한 미국은 비행장을 건설해 B-29 장거리 폭격기로 마음 놓고 일본 본토를 공습하기 시작했다. 탐색전에서 밀렸던 미국의 승리에는 기술력과 사람을 중시하는 사고가 깔려 있다. 미 해군은 실전에 막 투입된 신형 레이더 덕분에 일본 공습편대를 함대 전방 240㎞ 지점부터 파악하고 요격기 편대를 매복시킬 수 있었다. 조종사의 기량에서도 미국은 일본을 크게 앞섰다. 일본 함대를 폭격한 미군기들이 연료가 거의 바닥난 가운데 한밤중에 함대로 돌아오자 미 해군은 모든 함정의 서치라이트를 밝혀 안전한 착함을 유도하는 대담한 결정을 내려 조종사들의 생명을 구해냈다. 자칫 적함에 발견되면 함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까지 감수하며 인명을 구한 것이다. 전투 중에도 바다에 불시착한 123대의 항공기 승무원을 구출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80명의 조종사를 생환시킨 미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항속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비상용 낙하산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조국이 자신을 끝까지 지켜준다는 믿음은 강병을 만든다. 우리는 인적 자원을 얼마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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