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비서님'의 행복 누리기

만나는 사람들마다 표정이 어둡다. “정말 살기 힘들어요.” “말하기도 싫어요.” “잠들 때는 깨어나지 않았으면 할 때조차 있어요.”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 한다. 우리 사회 전반의 이 ‘어둠과 암담함’은 내게도 전염되었나보다. 지난 몇 주 참 힘들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고생하는데 정치의 무력함, 야당 의원으로서 답답함이 나를 내내 짓눌렀기 때문이다. 스케줄은 변함없이 빼곡히 쫓아다녔으나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없다는 그런 참담함이 내내 있었다. 그런 며칠 전, 아침에 급히 써달라는 어떤 원고를 보내고 한 9시 반쯤 국회로 들어섰다. 차 안에서 ‘아, 가을이구나’ 하다가 11월 초라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시간 가는 것, 계절의 바뀜조차도 여유 없는 내게는 사치였나 싶었다. 그런데 저만치 한 젊은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먼 데서 보아도 ‘뭐, 굉장히 좋은 일이 있나 보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뿐사뿐 정말 사는 것이 즐겁다는 듯, 좋아 죽겠다는 모습이었다. 유심히 그 여성을 지켜보다 나는 ‘어머나!’ 하고 놀랐다. 의원회관 우리 방의 천사표 ‘노 비서’였다. 노 비서는 하늘을 쳐다보며 노래라도 흥얼거리는 듯 환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뭐가 저렇게 좋은 일 있을까’ 하며 함께 차를 타고 있던 김 비서에게 말했다. “나 요새 저렇게 행복해 하는 사람 오랜만에 봐요” 했다. 그러자 김 비서도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뭐 좋은 일 있나 봅니다. 혹시 좋은 사람 생긴 것 아닐까요? 아니면 워낙 교회를 열심히 다니니까…. 세상에 아쉬운 게 없어 보여요.” 그러고 보니 우리 노 비서의 생활은 ‘기쁨과 봉사’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심신이 부자유스러운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사랑을 한결같이 보탰다. ‘아, 바로 그 헌신의 표정이구나. 내 방에 저렇게 행복한 삶을 사는 이가 있으니 참 다행이네. 나도 이 사회를 위해 남김없이 던진다면 저렇게 언제나 기쁨에 가득 차겠지?’ 내게는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그날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노 비서님’에게 물었다. “김 비서랑 저랑 아까 노 비서님 모습 보고 아니 저렇게 사는 게 재미있고 행복한가. 감탄했어요.” 그러자 우리의 노 비서, 뺨을 붉히며 간신히 이렇게 대답했다. “아까 보니까 은행잎이 너무도 아름다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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