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ㆍ변호사 비판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이번에는 호적업무 이관을 놓고 행정부와 정면 충돌양상을 빚고 있다. 호적업무 이관 논란은 수년째 지속돼 온 해묵은 과제지만, 최근 이 대법원장의 발언이후 수면위로 급부상해 또 다른 갈등조짐을 보이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말까지 호적업무 소관기관을 현행 대법원에서 법무부로 이관하는 작업을 완료한다는 내부 목표를 세우고 관련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최근 대법원이 완강히 거부해 사실상 ‘올 스톱’ 됐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호적업무가 국가사무로 된 이상 행정부처에서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대법원이 비용문제와 고유업무 임을 강조해 진척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법원조직법과 호적법에 따라 호적업무는 현재 지자체가 맡고, 감독은 관할 가정법원장이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호적법이 개정되면서 2008년부터는 사실상 법적으로 소관기관이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호적업무는 혼인ㆍ사망 등 각종 신고를 다루는 신분등록 업무이고, 국적취득과 이탈 등도 포함돼 법무부가 맡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무부는 대법원이 호적업무를 관리해 온 것은 일본잔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대법원이 호적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고, 이는 일본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소관기관을 법무부로 옮기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산망 이전 등과 관련 비용도 2억원에 불과한데도 대법원이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비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호적업무는 80여년간 법원에서 관장해 온 업무”라며 “법무부로 이관되면 인력ㆍ시설 등의 확충에 비용이 만만찮다”며 반박했다.
호적업무 이관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최근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일부에서는 법무부가 이 대법원장의 검찰ㆍ변호사 비판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대법원을 더욱 압박해 이관논의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대법원은 검찰ㆍ변호사에 이어 행정부서도 등을 돌리는 등 ‘왕따’ 신세로 전락, 사법개혁의 주도권은 물론 조직위상까지 급락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