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2일] 케틀레


[오늘의 경제소사/2월22일] 케틀레 권홍우 편집위원 시와 오페라를 짓고 미술을 공부한 ‘종합예술인’, 천문학자이자 통계학자. 체질량지수 개발자이며 과학적 범죄연구의 선구자. 케틀레(Adolphe Quetelet)의 면면이다. 다재다능한 그를 대표하는 것은 통계학. 근대 통계학의 시조다. 엥겔지수를 만든 독일의 엥겔이 광산학에서 사회통계학으로 눈을 돌린 것도 케틀레의 영향 때문이다. 1796년 2월22일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난 그는 작가를 꿈꿨지만 17세부터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공무원이던 부친이 사망한 후 기울어진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신설 겐트대학에서도 학생 겸 조교로 일하며 23세 때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작품을 발표하고 강의를 맡던 케틀레가 통계와 접한 계기는 천문대 건립을 위한 파리 연수. 프랑스에서 수학자들과 교류하고 돌아온 케틀레는 본격적인 통계분석에 들어갔다. 케틀레가 주목한 대상은 사람. 월별ㆍ지역별ㆍ기온별ㆍ시간별 출생률과 연령ㆍ직업ㆍ지역ㆍ계절과 장소에 따른 사망률을 조사하며 신장과 체중ㆍ성장률ㆍ음주와 정신병력 여부, 자살ㆍ범죄 등도 변수에 넣었다. 결과물은 1835년 발표한 ‘인간과 능력개발에 관한 연구’. 출간과 동시에 ‘문명사의 신기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정치산술, 독일의 국상학(國狀學ㆍ주민과 지리 환경 중심의 통계), 프랑스 확률론을 한데 묶은 이 책자는 근대 통계학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명성을 얻은 그는 국계통계학회(1853년)을 세우고 1874년 78세로 사망하기까지 범죄통계학의 문도 열었다. 쾌락지수를 개발한 영국의 경제학자 에지워스와 인종간 우열을 가리는 우생학의 창시자 골턴도 케틀레에게 영향을 받았다. 현상을 측정하고 체계화하려 애썼던 케틀레의 학문은 명제 하나로 압축된다. ‘결과는 원인에 비례한다.’ 입력시간 : 2007/02/21 17:08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