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6월 17일] 생계형 파업

대한민국이 멈췄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부산항 등 주요 물류기지의 기능이 마비됐다. 이 여파로 제품 출하가 지연되거나 가동이 중단되는 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은 ‘생계형 파업’이라는 생소한 말로 불린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파업’이란 의미다. 기름 값 폭등 등 물가는 다락같이 오르고 업계의 덤핑 경쟁으로 받을 돈은 적어져 일을 해도 남는 것이 없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파업을 이끄는 화물연대 노조원에 비해 비노조원의 파업참여 강도가 약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은 ‘생계형 파업’이란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다. ‘파업’이란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보수주의 성향의 사람들도 ‘문제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살 만한(?) 환경을 갖춘 노조가 정치파업을 벌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끼리 모여 만든 노조도 아닌 화물연대라는 단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했다면 아마도 여론의 뭇매를 맞아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계형 파업’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화주와 운송업자ㆍ화물차주가 모두 상생의 정신으로 신속하게 파업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생계형 파업’이 무조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생계형 범죄’라고 무죄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생계형 파업’이 또 다른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국가경제에 치명적 상처를 입히는 것을 관대하게 볼 수만은 없다. 특히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차량에 대한 공격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이번 물류대란의 가장 크고 직접적인 원인은 기름 값 폭등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유럽의 네덜란드ㆍ스페인ㆍ포르투갈ㆍ폴란드, 아시아의 필리핀ㆍ태국ㆍ홍콩, 남미의 아르헨티나 등이 고유가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트럭 운전사들이 고속도로에서 경적시위를 하거나 도심을 장악하고 생필품 공급 차질을 빚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나라가 마비된 곳은 없다. 이는 고유가라는 외생변수를 내부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화를 키운 측면이 크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기름 값이 올라갈 때 이 같은 사태를 예상했어야 했다. 그리고 물류대란이 발생하기 전에 관계자들 간 조정을 주선했어야 했다. 실제 포스코 등 몇몇 기업은 자체적으로 기름 값 인상분을 매달 반영해오고 있다. 기업도 고유가 대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는데 정부가 팔짱만 끼고 방관했다는 것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그동안 애써 눈감아오다 물류대란으로 나라가 마비되자 화물연대 집행부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선포하고 운송 거부자에 대해서는 유가보조금을 중단한다는 강경방침을 발표했다. 또 ‘실용정부’답게 현재의 난국을 푸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화주압박 카드를 내놓았다. 상대하기 만만한 화주들에게 운송비를 보전해주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한참 잘못됐다. 이 같은 방식으로는 물류대란을 해결할 수 없다. 사태 해결 방법은 ‘생계형 파업’을 하고 있는 화물차주들을 겁주는 것도, ‘만만한 놈 하나만 패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이런 헛다리 짚기 정책으로 화물연대 파업은 덤프 등 건설기계노조 파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금속노조ㆍ공공운수노조로도 확산될 움직임이다. 다행히 정부가 뒤늦게나마 실효성 있는 기름 값 보조와 최저임금제 같은 표준요율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면서 파업 해소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화주에서 주선업체와 운송업체, 화물차주로 연결되는 다단계 물류 하도급 유통구조를 단순화하는 일과 운송업체 간 고착화된 덤핑 구조 해소 등 근원적 해결책을 이번 기회에 강구해야 한다. 또 문제 발생시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 발생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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