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긴박한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이 지난 8월 중순 핵 불능화 중단을 선언하고 핵시설 원상복구에 착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핵 실험장 복구 움직임까지 보이며 긴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동안 냉담한 태도를 뒤엎고 북한의 전격적인 제의로 성사된 남북군사당국자 간 실무협의와 역시 북 측의 속 모를 초청에 의해 이뤄진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의 방북이 눈길을 끈다. 한반도 긴장 완화의 장애물 혹은 한반도 평화 조성의 단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런 사건들은 뒤죽박죽 섞여 도무지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곁가지인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6월26일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로 순풍을 타리라 예상됐던 북핵 협상은 검증체제구축 문제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해제를 둘러싼 북미간 신경전으로 안개 속에 빠진 형국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미국의 대선기간까지 겹치면서 북핵 문제는 ‘올스톱’ 상태에서 사실상 올해를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1일 북한을 전격 방문한 힐의 귀환 보따리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과는 곧 나오겠지만 낙관론과 비관론이 뒤섞여 있다. 낙관론자들조차도 힐의 방북이 결코 이른 시일 안에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의 평양 방문에서 당시 북핵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 동결문제와 핵 프로그램 신고서 문제의 해결 단서를 마련, 결국은 북한의 핵 불능화 착수와 핵 신고서 제출 성과를 이뤄냈다.
숀 맥코맥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2일 브리핑에서 “궁극적으로 공은 북한 쪽에 있다”고 한 발언대로 일단 사태 해결의 칼자루는 북한이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넘어간 공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문제는 경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의 태도다.
북핵 협상, 나아가 남북 문제는 네트를 가운데 놓고 양 선수가 서로 맞서 싸우는 경기여서는 안 된다. 상대의 빈틈에 공을 찔러 넣어 혼자 승리를 거머쥐는 게임 양상이라면 이는 비극이다. 한반도 문제는 서로 마주보고 싸우는 경기가 아니라 같은 골대를 향해 호흡을 맞추며 뛰는 경기여야 한다. 물론 같은 유니폼을 입고 말이다.
도무지 연기 속에 꽉 막혀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북핵 협상도 결국은 비상구가 있게 마련이다. 2003년 8월 시작된 북핵 6자 회담의 굴곡 많은 역사가 이를 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