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피해업체인 전자부품업체 A사는 작년 12월 정부가 실시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통해 50억원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받아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정부의 특별보증을 통한 패스트트랙 지원은 키코 손실로 허덕이던 A사에게 숨쉴 구멍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지원금 50억원으로 키코 손실금을 메우고 나자 더 이상 돈 나올 곳이 없어졌다. 패스트트랙 지원만으로도 대출한도가 이미 소진됐기 때문이다. 간신히 회사는 굴러가지만 투자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 10개월째 지속되면서 회사 매출은 날로 줄어드는'축소경영'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개월 뒤면 지원금 50억원의 만기일이 다가온다. 키코 손실로 신용등급이 급락한 데다 소송 문제로 은행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이 종료될 경우 금리인상을 비롯해 각종 불이익을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 대출 상환요구까지 각오해야 할 판이다. 이 회사의 자금담당 임원은 "키코 가입업체들은 매출유지도 안되는 운영자금으로 버텨야 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며 "여기에 패스트트랙 지원마저 끝나면 경영사정은 크게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이후 모진 한파를 겪어 온 키코 피해업체들이 이달 중순부터 속속 돌아오는 패스트트랙 만기를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직 은행권과의 키코 소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정부의 패스트트랙 지원이 종료될 경우 대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은행들의 추가 담보나 금리 인상요구가 불가피하고, 대출 규모도 큰 폭의 조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30일 키코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키코 피해기업들은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계당국에 패스트트랙 지원을 연장해 달라고 건의할 예정이다. 중앙회측은 패스트트랙 지원을 키코 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추가로 연장하고, 피해기업들의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한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해 주도록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키코 공대위 관계자는"최근 정부가 신ㆍ기보의 보증을 축소한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중소기업 지원이 줄어드는 분위기인데 패스트트랙 지원까지 종료된다면 키코 업체들의 유동성은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들 업체는 일반 중소기업들과 달리 키코 소송으로 은행과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 일부 업체들은 은행으로부터 가압류를 당하거나 예금이 동결되는 등 은행권으로부터 강도높은 압박을 받고 있다"며 "키코 업체들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 적어도 키코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 피해업체들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그나마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으로 지원을 받은 업체들은 사정이 낫긴 하지만 패스트트랙 지원이 기존 대출 한도 내에서 이뤄짐에 따라 키코 피해업체들은 경영 개선의 손발이 묶인 상태"라며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패스트트랙 만기 연장과 지원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경기회복세가 실물경제로 확실하게 전이됐다는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 종료 시한을 내년까지 재연장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도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시적인 프로그램이 종료되더라도 일반 지원제도로 옮겨가면 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자금이 차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작년 10월13일 시행된 패스트트랙 지원은 6월말까지 9,803개 업체에 대한 신규대출 및 만기연장을 통해 총 17조7,000억원 규모로 이뤄졌으며 하반기 들어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키코 피해업체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원금은 이 가운데 4조7,000억원에 달한다. ◇패스트트랙: 정부가 중소기업의 극심한 자금난 해소를 위해 만기 연장과 신규자금 지원 등 유동성을 제공해주는 신속지원 프로그램을 말한다. 경영여건은 좋지만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을 대상으로 한시 적용되는 특별지원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