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30대이상 성인들 중에는 `어린이헌장`이 있는지, 그리고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린이헌장은 아동문학가 마해송ㆍ강소천씨 등이 주축이 되어 제정된 것으로 1957년 5월5일 공포됐다.
어린이들의 권리와 복지, 바람직한 성장상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전체가 관심을 갖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첫 제정이후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70년대 후반에도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에다 상당수 내용은 사문화 된 상황이었다.
마침 197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아동의 해`였다. 당시 미국ㆍ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들이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 사회적 토양을 마련해 주는 일을 주요 정책과제로 삼았다. 그 해 3월말 이원수ㆍ김영일ㆍ박경용ㆍ안희웅씨 등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제의를 했다.
“이제 예림당도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주제가 좋은지 의견을 모아 주시면 최선을 다해 추진해 보겠습니다.”
이런 저런 의견이 나오다가 “지난 57년에 제정된 어린이헌장에 문제가 많으니 여론화시켜 시대상황에 맞게 고칠 수 있다면 뜻 있는 일일 것”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어린이헌장을 개정한다는 것은 몇 사람의 생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방향을 잡기 위해 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예림당보다 연륜이 오래된 출판사라고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개최한 적이 없는 터였다. 잘 마무리 할 수 있을지 심적인 부담감을 갖기도 했지만 각계의 자문을 받아가며 세밀하게 준비를 했다.
주제 발표자와 패널을 섭외 한 후 장소는 출판문화회관 강당으로 정했다. 행사는 예림당이 주최하고 아동문학가협회 등이 후원하는 형식으로 하고 타이틀을 `어린이헌장의 문제점`으로 잡아 그 해 4월23일 행사를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는 김영일(한국아동문학회 회장)씨가 `어린이 헌장의 정신`을, 유경환(조선일보 논설위원)씨가 `어린이헌장 정신의 확산`을, 최창열(중대부속초등학교 교사)씨가 `어린이 헌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박경용(시인ㆍ아동문학가)씨가 `어린이 헌장 이대로 좋은가`를 발표해 호응을 받았다.
또 이원수(아동문학가ㆍ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씨는 `어린이에게 줄 헌장이 따로 필요한가`를, 나는 `어린이 헌장의 이상적인 보급 방법` 을 발표를 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사회는 안희웅(다큐멘타리 작가)씨가 맡았는데 패널리스트는 이상금(연세대 교수)ㆍ김종상(아동문학가)ㆍ이영호(아동문학가)씨 등 10여명을 초청했다.
세미나에서는
▲어린이 헌장의 문장과 내용이 시대흐름에 맞지 않고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인식마저 희박해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어린이 헌장의 폭 넓은 보급을 위해 국가와 사회단체, 아동도서 출판사들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현실론도 제기됐다. 세미나의 주제가 세계 아동의 해에 걸 맞는 문제여서 그랬던지 텔레비전 뉴스는 물론 중앙 일간지와 부산일보 등 지방신문에서도 주요 내용을 발췌해 보도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예림당에서 출간하는 동화책에 어린이헌장 전문을 실어 보급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애석하게도 다른 출판사들은 그다지 관심을 갖는 곳이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1988년 5월5일, 제66회 어린이날에는 당시 세미나를 통해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위주로 어린이헌장이 개정ㆍ공포되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던 시절, 예림당이 어느 단체나 누구보다 어린이헌장 개정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최원정기자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