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12월 10일] 기업원죄론

요즘 중국에서는 기업 원죄(原罪) 논쟁이 불붙고 있다. 올해 루퍼트 후거월프(중국명 후룬ㆍ胡潤)가 선정한 중국의 최고 부자 황광위(黃光裕) 궈메이(國美)그룹 회장이 주가조작 및 불법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쓰촨성(四川省)의 여성 기업가인 셰빙(謝氷) 한탕(漢唐)실업 회장이 사업자금 수억위안을 불법 조달한 혐의로 사법 처리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일부 기업인들은 “시장경제의 태동기나 다름 없는 중국에서 기업의 불법행위는 원죄나 다름없이 불가피했다”고 항변한다. 후거월프도 “상당수의 중국 기업인들은 부호 순위에 오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의 돈에 ‘원죄’가 있어서 재산규모가 드러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정도이니 중국 민영기업의 부패구조는 뿌리가 깊기는 깊은 모양이다. 기업 원죄론 옹호자들은 ‘숯 이론’을 예로 들어 “상당수 민영기업은 태생적으로 숯과 같아 이를 표백하려 들면 숯 자체가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논리를 펴지만 중국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지금 이 같은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상황이 좋았던 지난 2006년에는 ‘기업 원죄론’이 제법 위력적이었다. 당시 황 회장은 창업초기에 13억위안(약 2,600억원)의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았었는데 충칭(重慶)시 서기였던 왕양(汪洋)과 후더핑(胡德平) 중국공상연합회 제1부주석 등 중국 정계의 실력자들이 “민간기업 창업주들이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조사하는 것은 개혁의 후퇴”라고 변호하고 나서면서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업 원죄론에 힘입은 황 회장의 면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중국 사정 당국이 황 회장에 대한 조사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언론을 통해 비리사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 시민들은 주가조작을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황 회장에 대한 처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사정 당국이 2006년과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갸우뚱하고 있다. 심지어 민생고로 불만이 가득한 민심을 달래려는 ‘사정의 칼날’에 중국 최고의 갑부인 황 회장이 시범케이스로 걸려들었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걸 보면 사정의 효과가 만점은 아닌 듯하다. 중국 사람들은 “물(민중)은 배(권력자)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는 말을 즐겨 쓴다. 민심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중국 관료들의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는 글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 정부의 선택적 사정이 예기치 못한 역풍을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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