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선의의 거짓말은 때론 삶을 풍요롭게 한다?

■ 거짓말의 심리학<br>"얼굴 좋아보여" "술 한잔 합시다"<br>'제2의천성' 원만한 삶 위해 필요<br>습관적 반복은 인격장애치유해야

드라마 '하얀 거짓말'

영화 '리콜라'의 한 장면

거짓말 탐지기


"조만간 한턱 쏠게" "집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혹은 부하 직원이 직장 상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의 유형이다.(취업 포털 커리어 직장인 1,028명 조사)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단지 친한 오빠일 뿐이예요", "자기랑 사귀기 전에 만난 여자는 두명 뿐이야", "미안, 급한 약속이 생겼어. 내가 연락할게" 등 들으면 대번에 거짓말로 의심되는 대화는 일상 생활에 널려 있다. 어릴 때부터 피노키오나 양치기 소년 이야기 등을 통해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배워오면서 거짓말을 죄악시하는 도덕 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지만 실상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넘쳐난다. 사실을 축소, 과장, 왜곡, 은폐하는 일은 일상에서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든 악의든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당장 최근의 뉴스만 보더라도 세상은 거짓말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피의자인 김길태는 여중생을 살해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쳐 자백을 얻어냈다. 인사 청탁을 위해 뇌물을 줬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와 뇌물을 받은 적 없다는 한명숙 전 총리는 서로 거짓말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자들 중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하루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하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은 인간의 본능이고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상 생활 도처에 널린 거짓말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까. 만우절을 맞아 거짓말의 심리학을 살펴봤다. ◇만우절과 거짓말=4월1일 만우절은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헛걸음을 시키기도 하는 서양의 풍습이다. 전세계적으로 만우절은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을 쳐도 나무라지 않는 날로 정해져 있어 전 세계인이 함께 웃고 즐기는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만우절은 15세기에 제프리 초우서가 쓴 '수녀와 수도사의 이야기'에 나올 정도로 유래가 깊다. 그 옛날 만우절이 왜 생겨났는지는 설이 분분하다. 16세기에 프랑스의 샤를 9세가 새로운 역법(그레고리력)을 채택해 신년이 4월 1일에서 1월 1일로 바뀌었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4월1일을 새해의 시작이라고 여겨 축제를 준비했고 이를 비웃는 데서 바보의 날(April Fools' Day)이 시작돼 전 유럽에 퍼졌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어로 만우절은 '4월의 물고기(Poisson d'avril)'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물고기는 고등어를 가리킨다. 고등어는 4월에 많이 잡히는데 식품으로 애용되는 4월 1일에 속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동양 기원설도 있다. 인도에서는 춘분에 불교의 설법이 행해져 3월 31일에 끝났는데 신자들은 수행 기간이 지나면 수행의 보람도 없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이 날을 야유절(揶揄節)이라 부르며 남에게 헛된 심부름을 보내는 등 놀리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때 물이 빠져나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둘기를 내보낸 날이 4월 1일이었다는 설, 로마시대 농업의 여신 케레스를 기념하던 축제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등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매년 만우절마다 해외 언론들의 장난 기사에 국내 언론들이 '당하는' 해프닝도 일어난다. 지난해에는 러시아 영자지인 모스크바 타임스가 '러시아-미국 대통령 전용차 대결'이라는 제목으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차 '질 리무진(별명 하마)'이 방탄 능력이나 내부 시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전용차 '캐딜락 원(별명 야수)'을 월등히 압도한다"는 내용의 거짓 기사를 보도했다. 또 영국 대중지 텔레그래프는 내부에 최고급 호텔 시설을 갖춘 헬리콥터가 곧 처녀 비행을 실시한다는 장난 기사를 내보냈다. 국내 언론들은 이들 기사를 실었다가 나중에서야 거짓임을 확인하고 해명 기사를 내보내는 '때 아닌 소동'을 벌였다. 만우절의 기원이 무엇이었던간에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온 것은 일년중 단 하루만이라도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뜻밖의 거짓이나 장난에 웃음지으며 삶의 긴장을 풀고 해방감을 만끽해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거짓말의 긍정적 효과=만우절이 수세기동안 계속 유지되고 거짓말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 상존하는 것은 거짓말이 나름대로 긍정적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감정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거짓말은 학문적 관점에서 등한시 돼왔으나 최근들어 심리학자들은 거짓말에 대한 과학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거짓말이 원만한 삶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거짓말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은 "거짓말은 인간의 제2의 천성"이라고 주장했으며 만하임 대학의 사회심리학자이자 거짓말 연구가인 마크 안드레 라인하르트는 "거짓말은 사회의 공동 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클라우디아 마이어는 저서 '거짓말의 딜레마'(열대림 펴냄)에서 "거짓말은 진화의 원동력이고 생존 전략이며 일종의 사회적 윤활제"라며 "거짓말을 함으로써 많은 행운을 불러올 수 있으며 거짓말은 우리 세상을 결속시킨다"고도 주장했다. 가령 "얼굴 좋아 보여요", "다음에 술 한 잔 합시다" 같은 말의 진위를 따지기보다는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을 직접 하는 사람은 자신의 배려와 공손함에, 이 말을 들은 사람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인간 심리의 보편성에 서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환자가 그 거짓말을 믿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위약 효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때 의사의 거짓말은 전혀 해롭거나 쓸모 없는 것이 아니란 주장이다. 거짓말은 선천적 능력이 아니라 습득되는 능력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네 살 전후로 거짓말을배운다고 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찰스 포드는 고유의 정체성을 키우고 부모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거짓말이 아동 발달에 매우 중요하며 "거짓말은 일종의 탯줄 떼기 과정이고 사춘기에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즉 거짓말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결코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거짓말의 본질은 위험하다=이렇게 거짓말은 자신이나 남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본질 자체는 역시 위험하다. 거짓말은 실수와 속임, 변명, 은폐와 만나 점점 더 불어난다. 더욱이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가 사회 지도급 인사라면 그 폐해가 막대하고 치명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라인하르트는 '거짓말하는 사회'(플래닛미디어 펴냄)에서 "개인의 거짓 진술을 뛰어 넘어 '거짓말이 구조화된 사회'는 문제가 있다"며 "거짓말을 부추기고 거짓말에 무감각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거짓말이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판단하고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찰스 포드는 자신의 저서 '왜 뻔한 거짓말에 속을까'(21세기북스 펴냄)에서 '가장 흔한 거짓말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거짓말'이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자기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또는 더욱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자신을 속인다"며 "뻔한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그 자신이 거짓말에 속고 싶어하는 '자기 기만 심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기 기만은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악의 있는 거짓말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인간 관계의 친밀감을 깨뜨릴 수도 있다"며 "언제 어떻게 거짓말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하는지 아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은 '리플리 병'이라 불리는 인격 장애다. 리플리는 패트리샤 스미스의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으로 사소한 거짓말 때문에 재벌가의 아들을 만나게 되자 점점 더 대담한 거짓말로 신분을 위장하게 된다. 알랭 들롱이 주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년)와 1999년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리플리'에서 등장했다. '리플리 병' 환자들은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으면 가상의 세계에서 실현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거짓말의 진화'(추수밭 펴냄)를 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엘리엇 애런슨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속임수와 거짓말과 변명이 번성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대인들은 변화하는 세상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압박감을 항상 느낀다. 실수를 저지른 현실과 자신의 자기존중감이 충돌할 때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자기정당화가 작동한다. 자기정당화는 책임을 면제해주는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 자신이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옳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거짓된 믿음은 거짓말이 진화하는 자양분이 되며 우리를 어리석고 부도덕하며 그른 행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거짓말의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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