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9월 30일] 공기업 선진화 원칙의 모순

공기업은 국가의 고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고 그 설립목적에 맞게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운영돼야 한다. 공기업은 민간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민간기업은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값싸고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지만 공기업은 국가가 정한 각자의 고유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정부는 이 같은 공기업 운영원칙에 따라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기능이 중복되는 기관에 대해서는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5일 발표된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 내 산업단지 시행자 결정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원칙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현재 정부는 기능 중복을 이유로 대한주택공사과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을 보면 현 정부는 공기업의 기능 중복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공기업 간 경쟁을 유발해 기능 중복을 조장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만금사업은 사업시행자 선정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직권지정 방식으로 토공과 한국농촌공사 두 기관에 사업제안서 제출을 의뢰, 제안서 심사를 통해 높은 점수를 받은 기관을 최종 시행자로 결정했다. 단군 이래 최대사업이라는 새만금사업의 첫번째 시행자 선정과정에서 언론은 과연 어느 기관이 선정될 것인지를 두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새만금구역청은 시행자 선정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두 공공기관의 경쟁방식을 통해 조성원가를 낮추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공정한 심사과정을 통해 시행자를 선정함으로써 절차적인 투명성도 갖추려는 노력을 했다. 문제는 공기업 선진화를 위해 기능 중복을 해소하겠다고 하는 현 정부체제에서 공기업 간의 경쟁과 기능 중복을 유발한 전형적인 선례를 보여준 데 있다. ‘한국농촌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상 한국농촌공사의 주요기능은 농어촌정비사업, 농업기반시설관리, 농업인 영농규모 적정화를 촉진해 농업생산성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반면 토공은 한국토지공사법상 공사가 할 수 있는 업무에 산업단지 조성업무가 분명히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기능 중복을 해소하겠다는 현 상황에서 기능이 전혀 다른 두 기관을 경쟁시켰고 공사법상 근거규정도 없는 농촌공사를 산업단지 시행자로 결정함으로써 또 다른 기능 중복을 야기한 것이다. 이 사업을 시행하면서 농촌공사는 아마 근거법을 개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시행자 선정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기능 중복 유발에 대한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가 감독권한을 지닌 주요 국책사업에서 정부가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과연 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철학은 무엇이고 또 원칙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공기업 간의 업무영역을 무너뜨리는 것은 지금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분명히 배치되는 것이다. 현재의 통합추진정책이 정치적 상징성을 위한 ‘보여주기식’ 통합이 아니라면 정부는 우선 분명한 공기업 선진화의 원칙을 세우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에 대한 타당성 검토 및 경영 진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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