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31일] 창문세(Window Tax)

벽난로세(Hearth Tax)는 조세저항을 야기했다. 화로 수를 파악하기 위해 집에 들어오려는 징수업자들과 주민간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영국은 결국 1688년 벽난로세를 없애버렸다. 사람들은 환호작약했지만 당장 국세수입에 차질이 생겼다. 영국의 당시 세입규모는 약 180만파운드. 20만파운드를 걷어주던 벽난로세 폐지는 다른 세목의 신설로 이어졌다. 1696년 12월31일, 영국 의회는 ‘창문세(Window Tax)’ 신설을 의결했다. 창문세는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일종의 재산세였다. 창문의 재료인 유리가 워낙 비싸 창문 없는 집에 사는 사람도 많던 시절이다.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자 파장이 일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부쉈던 사람들은 창문을 아예 없앴다. 신축 건물에는 창문을 달지 않았다. 건물들의 외형은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세금보다 어둠을 택한 것이다. 당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창문간 간격이 일정 기준보다 벌어져 있으면 별도의 창문으로 간주해 세금을 때렸다. 일시적으로 창문을 폐쇄했다가 다시 여는 행위가 적발될 경우 20실링의 벌금을 물렸다. 창문세는 1851년 주택세가 도입될 때까지 존속했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의 법칙’을 주창한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Say)는 영국 여행에서 창문세의 폐단을 목도한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세금 비판론을 쏟아냈다. 창문세는 오늘날에도 어리석은 조세정책을 비꼬는 용도로 회자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창문세를 도입한 장본인은 윌리엄 3세. 명예혁명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데려온 군대는 물론 아일랜드와 아메리카 식민지 유지에도 돈이 들어갔다. 창문세는 명예와 민주주의, 제국 팽창의 다른 이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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