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절 스타디움에 꽉 들어찬 한국 팬들의일방적인 야유에 주눅이 들었을까. 앙다문 입술에서는 오기가 느껴졌지만 천하의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도 한 번 넘어간 분위기를 되찾아올 수는 없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대표팀 유일의 메이저리그 타자 이치로가 고개를숙였다. '30년 동안 넘볼 생각을 못하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한국에 그것도 두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이치로는 고군분투했다. 후속 타자들이 한국의 황금 계투조에 원천 봉쇄되는 통에 홈을 밟지 못했을 뿐, 톱타자로서 할 일은 다했다.
그는 16일(한국시간) 한국전에서 1회 첫 타석에서 박찬호로부터 중전 안타를 때려내며 득점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뒤 타자들이 범타에 그치면서 2루를 밟는데만족했다.
3회에는 박찬호의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됐다. 6회 무사 1루에는 초구에 보내기 번트로 선행 주자를 2루로 보냈다. 8회에는 중견수플라이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치로는 일본 야구의 상징이다.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후 통산 타율이 무려0.332다. 2004년에는 262안타로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운 슈퍼스타다.
그는 '애국심'을 걸고, WBC를 앞두고 사망한 '영원한 스승' 오기 아키라 전 오릭스 감독을 위해 WBC에 출장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홀로 득점 루트를 뚫어야 하는 이치로는외로웠다.
오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이 그토록 합류를 원했던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뉴욕양키스), 이구치 다다히토(시카고 화이트삭스) 등 메이저리거가 가세했다면 이치로의 어깨도 가벼웠을 것이다.
부담이 심했던 이치로는 16일 한국 팬들의 야유에 심정이 상했는지 파울 타구를잡다 실패했을 때도, 더그아웃에서 한국선수단이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장면을 지켜봤을 때도 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 5일 한국에 패한 뒤 스스로 밝힌 '굴욕적'이라는 표현이 다시 뇌리에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날까지 WBC 타율 0.292로 전매특허인 3할 타율을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