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국 대통령’이 그립다

청명한 가을날씨 선물을 받고도 민심이 무척 사납다. 참여정부에서 살고있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지난 97년 외환위기이후 최악이라고 아우성이다. 기업인들은 국내에서 사업할 맛을 잃고 해외로 대거 공장을 옮기고있다. 회사원들은 지나친 업무부담과 고용불안으로 떨고있다. 자영업자나 택시 운전자들은 눈에 띄게 손님이 줄어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청년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경기 하강이 이어진 데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수출마저 흔들리고있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경제회생을 외면한 채 허울좋은 신당을 만들거나 내각제 논의 등 당리당략에 사로잡혀있다. 더구나 국정최고 책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권 이합집산을 주동하고있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국민참여통합신당(이하 신당)은 지난 17일 노 대통령이 광주ㆍ전남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신당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면 신당개입으로 오해 될 수 있어 자제해 왔으나 마냥 회피할 수 만은 없다”고 언급한 뒤 20일 전격 출범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24일 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 언론인들과 인터뷰에서도 “신당이 만들어지는 상황을 그저 정치권 분열이나 싸움으로 볼 것은 아니다”면서 “대통령이 신당에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않느냐는 짐작이 그렇게 틀리지않은 게 사실”이라며 신당에 대한 속 마음을 드러냈다. 신당 출범으로 4당 체제가 이뤄져 국정 불안을 가중시키고있다. 국회는 한나라당(148석)을 비롯, 민주당(63석), 신당(43석), 자민련(10석)으로 재편된 셈이다. 신당을 여당으로 설정할 경우 여당 비중이 16%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볼 때 야당이 연합작전을 펼치면 정부가 희망하는 각종 법안 통과 저지는 물론 내각제 개헌(국회 의석 3분2 찬성으로 가결)까지 감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 정당사를 보면 새 대통령이 그의 통치철학을 실천하겠다는 미명아래 거의 자동적으로 신당을 만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민주정의당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새정치 국민회의로 정권을 잡은 뒤 새 천년 민주당을 등장시켰다. 이번 신당도 `개코`(개혁코드) 신봉자로 알려진 노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겨냥한 포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주도로 탄생시킨 정당 가운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민주당` 뿐이다. 평소 당정분리를 주창한 노 대통령은 조속히 탈정치를 선언한 뒤 여야 정치권의 협조아래 국정운영에 전념해야 하지않을까. 인기도가 낮은 노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견제를 받으면서 힘겹게 국정을 이끌어가야 할 형편이다. 그가 상고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지난 대선 때 이론상으로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노풍`을 일으켜 대권을 잡은 신화를 창조한 경험이 있다. 아마 그는 내년 총선 때 제2의 노풍을 바라고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모험을 감행할 시기가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다수 국민이 노짱의 신당 개입을 바라지않고 있다. 국가 최고경영자(CEO)가 신당과 더불어 정치개혁을 모색할 여유가 없다. 노 대통령은 내년 총선용으로 예비한 장관들을 빨리 정리하고 오직 국정수행에 전념할 인사를 기용하는 개각을 단행해야 한다. 국가 운영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경제위기 처방에 `개코`가 묘약이 아니다. 팽배한 집단이기주의와 국정혼선 등으로 혼란스런 사회갈등을 풀고 국민화합을 바탕으로 경제를 살리는 게 급선무다. 매사에 늦다고 생각할 때가 좋은 기회다. 노짱이 겸손한 마음으로 대국민 선언을 통해 당적을 버리고 `한국 대통령` 으로 업 그레이드 코리아 만들기에 총력을 쏟겠다고 천명한 뒤 민심 수습에 나선다면 추락한 인기가 되살아 날 것이다. <황인선(정치부장) hi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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