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 소송

대등한 합병인가, 사기에 의한 인수인가. 지난 98년 독일 자동차 회사 다임러-벤츠가 크라이슬러를 합병할 당시만 해도 뉴욕 월가와 미국 언론들이 두 회사의 합병에 이러쿵저러쿵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초 합병전 크라슬러의 대주주이자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업자인 커크 커로리언이 독일 경영진들이 대등한 합병 약속을 어기고 미국측 경영인들을 몰아낸 것은 사기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이슈가 미국의 매스컴을 타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본사에 머물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위르겐 슈렘프 회장은 법원 소환장을 받고 메릴랜드의 한적한 마을로 불려와 서투른 영어로 답변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소송의 핵심은 독일의 경영진들이 자기마음대로 미국 경영인들을 갈아치우고, 그래서 크라이슬러의 경영이 엉망이 되고 주가가 폭락, 주주들이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소를 제기한 커로리언은 슈렘프 회장이 파이낸셜타임스와의 회견에서 “계약 당시에 대등한 합병이라고 했던 것은 심리적인 이유에서였다”고 밝혔던 말을 물고 늘어졌다. 독일측이 미국 경영진과 정서를 안심시키기 위해 대등한 합병인 듯 위장하고, 곧이어 인수자로 군림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두 회사는 합병후 10대8로 이사회를 구성했으나, 지금은 10대1로 독일측이 압도하고 있으며, 미국측 회장과 사장이 얼마 후에 물러나고 독일에서 온 경영진에 의해 디트로이트 공장이 경영됐다. 계약 당시 로버트 이튼 회장을 비롯, 크라이슬러측의 임원들이 슈렘프 회장의 독단에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법정에 선 슈렘프 회장은 동문서답을 했다. 전세계 자동차 산업이 소수ㆍ대형화하는 과정에서 규모와 기술, 비용의 측면을 고려해 다임러와 크라이슬러를 합쳐 글로벌 기업화한 것이며, 각국의 공장은 분공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워낙 난해해 내로라는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글로벌 단일 시장을 주도하던 미국에서 자국 기업이 외국 회사에 먹힌 것을 놓고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경영진이 글로벌 경영을 앞세우고, 미국측 주주가 자국 이기주의를 펼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송은 내년 1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합병 문제를 떠나 글로벌리즘에 대한 재판 성격을 띠고 있어 미국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철균기자 fusionc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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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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