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데스크 칼럼/9월 17일] 공정사회와 게임의 룰

우현석<생활산업부장> 외교통상부가 지난 13일 한정수 감사관 명의로 ‘제보자에게 불이익도 없도록 하겠으니 인사상 문제나 비리가 있으면 제보해달라’는 이메일을 2,000여 직원에게 발송했다. 그 결과 15일까지 모두 16통의 제보가 접수됐다. 이 중 9통은 제보자가 이름을 밝힌 제보였다고 한다. 이 보다 한 주 앞 선 지난 5일에는 ‘유명환 장관 사퇴’ 후속 기사로 ‘외무고시 영어능통자 전형 합격자의 41%가 외교부 고위직 자녀’라는 뉴스도 보도됐다. 한 여당 의원이 지난 5일 외교통상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7년부터 2003년까지 22명을 선발한 외시 영어능통자 전형에서 9명이 전ㆍ현직 장ㆍ차관과 3급 이상 고위직 자녀로 나타난 것이다. 외교부의 외무공무원 영어능통자 전형은 외국에서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자로 응시자격을 제한했었다. 물론 외국어 구사능력은 외무공무원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외교관이나 주재원으로 장기간 해외 근무를 했거나, 외국으로 살러 갔다가 되돌아 온 역이민자가 아닌 다음에야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과정을 6년 이상 해외에서 이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6년이라는 긴 세월을 해외에서 보내고 다시 국내로 들어와 살고 있을 정도라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지간한 상류층임에 틀림없다. 그 만한 상류층이나 돼야 갖출 수 있는 자격이라면 그 것은 의도적인 특혜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같은 특혜는 외교부만의 있는 문제일까? 고개를 돌려 외국에서 살던 교민이나 주재원의 자녀를 대상으로 대학신입생을 뽑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눈을 돌려 보자. 재외국민 특별전형은 해외에서 2~4년 이상 학교를 다니다 돌아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최근 들어 재외국민 특별전형의 경쟁률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하위권 대학 입학은 이 방법을 통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해외에서 거주할 수 있었던 능력을 가진 부모들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부모들도 주재원이었건, 공무원이었건 간에 어지간한 상류층임에는 틀림없다. 또 개중에는 아예 대학에 쉽게 진학할 요량으로 조기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부류도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외교부의 영어능통자 전형이나, 재외국민특별전형은 모두 일부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불러 온 잠재적 역기능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같은 제도가 초래한 조기 유학이나 영어 연수 광풍도 외면할 수 없다. 미친 영어바람에 맞춰 학원이나 원어민 교사들, 영어자격 시험을 주관하는 몇몇 대학들이 콧노래를 부르는 동안 학부모들은 등골이 빠졌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최소한 대학입시에서 영어 특기자를 선발할 때 만이라도 외국에서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학생들은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만 하다. 그래야 경쟁이 공정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학성 경희대교수는 이런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영어 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영어 실력중 상당 부분은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부모 덕에 어려서 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영어를 쉽게 배운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복을 받은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대학 마저 쉽게 들어가는 특혜를 주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들만 혜택을 보고 있는 이 제도는 당장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들이야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학생들을 선발하면 땅 짚고 헤엄치듯 영어능통 학생을 뽑을수 있겠지만 나라 잘 못 만나고, 부모 잘 못 만나서 외국 물 한 번 못 마셔 본 어린 학생들을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 온 또래들과의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불공평하다. TV를 켜고, 신문을 펼치면‘공정사회 구현’이라는 구호가 넘쳐 흐르는 이 차제에 이 문제 만큼은 꼭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hnskwoo@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