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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비' 조각 200년 만에 다시 찾았다
입력2009.09.03 17:55:48
수정
2009.09.03 17:55:48
경주시 주택서 사라진 상단부 발견<br>훼손 심하지만 비문 파악 문제없을듯<br>하단부는1961년에 찾아 현재 전시중
| 신라 30대 문무왕릉을 기리는 문무왕릉비편이 2일 수도검침원에 의해 발견됐다. 문무왕릉비는 1796년 조선시대에 발견됐다는 문헌 기록이 있을 뿐 이후 행방이 묘연했고 이번에 200여 년 만에 재발견됐다. /사진제공=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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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1793~1853)의 저서'해동금석원'에 문무대 왕릉비의 비문 내용이 실려 있다. /사진제공=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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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발견됐다 사라진 신라 제 30대 문무왕릉비편(文武王陵碑片ㆍ문무왕 재위 661~681)이 200여년 만에 다시 발견 됐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경주시 동부동 주택 내에서 문무왕릉비의 위쪽 부분이 발견됐다고 3일 밝혔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인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임금으로 문무왕릉은 경북 월성군 봉길리 앞바다 대왕암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문무왕릉비 상단부 조각의 발견자는 수도검침원이었다. 2일 수도 검침 차 들른 주택 내 수돗가 마당에서 글씨가 새겨진 비석을 발견해 이 사실을 신라문화동인회 김윤근 부회장에게 제보한 것. 즉시 국립경주박물관 연구실이 현지 조사를 진행해 그 동안 실물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던 문무대왕릉비의 상단 부분임을 확인했다.
682년 세워진 문무왕릉비는 바닷가에 위치한 문무왕릉이 아닌 사천왕사에 축조됐다. 진정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사천왕사는 문무왕이 삼국 통일 후 최초로 건립한 사찰이며 (사찰이 위치한) 낭산이 문무왕이 화장된 곳이어서 문무대왕릉비는 사천왕사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문무대왕릉비에 관한 기록으로는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洪良浩ㆍ1724~1802)의 저서 '이계집(耳溪集)'에 1796년(정조 20년) 비편들이 발견됐던 사실이 전해진다. 이 비편의 탁본이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ㆍ1793~1853)에게 전해져 그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비문이 실려있다.
그러나 비편의 실물들은 그 뒤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신라 왕들의 비석은 여러 왕조를 거치며 수난을 겪었다. 일례로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태종무열왕릉비편은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조각 나 있고, 흥덕왕릉비 역시 왕릉 주변에 수십개 조각으로 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언제 누가 어떤 의도로 깼는지 여부는 현재 연구중이다.
조선시대에 발견된 후 사라진 문무왕릉비가 다시 나타난 것은 지난 1961년. 경주 동부동의 주택가에서 '하단부' 비편이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비편은 '상단부' 조각으로 장기간 노출에 의해 표면이 훼손되고 가장자리 부분 등의 일부는 마모가 심한 상태이나, 비문의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진 연구사는 "'해동금석원'에서 제대로 밝히지 못한 일부 글자에 대해서도 실제 비편과 비교해 추가적인 판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마당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비석 뒷면의 잔존 상태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관계 당국과의 협의를 거친 다음 박물관 보존처리팀의 주도로 비편을 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한편 48년 전에 발견된 문무왕릉비 하단부 비편은 현재 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천왕사 특별전'에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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