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보험산업] 민영의보 활성화 절실 '본인부담금' 보당 계속 허용, 工보험 보완해야 조영훈기자 dubbcho@sed.co.kr “회사원 L(33)씨는 지난해 11월 민영의료보험에서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을 금지한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서둘러 보험설계사(FC)를 찾았다. 그는 월 2만원 정도 내는 실손형 민영건강보험에 가입했다. 보건복지부가 앞으로 민영건강보험에 법정 본인부담금을 부담하지 못하게 하면 본인이 부담하는 치료비가 많아질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복지부와 보험업계가 대립각을 세웠던 민영건강보험과 공보험(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역할 논의는 지금 잠복기에 있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이 문제가 다시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업계는 복지부의 ‘법정 본인부담금 금지’ 방침이 업계의 사활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특히 손해보험업계는 그나마 대규모 자동차보험 적자를 타개할 수 있는 대체상품 판매의 길마저 막는 정부의 처사에 분노를 나타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국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11월 고혈압으로 응급실을 찾았던 국영기업체 공무원 P씨의 사례를 보자. 병원 응급실에서 처지를 받은 P씨가 지불한 총의료비는 요양급여 15만5,834원과 비급여를 합해 20만5,834원. 이 가운데 국민건강공단에서 부담하는 6만8,924원을 제외한 13만6,910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다행히 P씨는 월 5만2,000원을 내는 S보험사 실손형 보험에 가입했다. 그는 카드로 결제한 금액 전액을 이틀 뒤 S보험사로부터 돌려받았다. P씨의 부담은 0원. 하지만 현재 복지부가 추진하는 방향대로 법이 개정되면 P씨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8만6,910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13만6,910원 가운데 비급여 항목 5만원만을 보험사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민영건강보험을 통해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의료비 실비보장)에 가입한 사람은 지난해 말 1,500만명을 넘었다. 국민 3명 중 1명이 실손형 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실손형 보험료 규모는 지난 2001년 3,560억원에서 2003년에는 5,262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05년에는 6,828억원으로 4년 만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2003년부터 실손형 상품 판매가 허용된 생보업계가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장은 향후 ‘블루오션’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업계가 추정한 2005년 국민 총의료비는 33조2,000억원. 이 가운데 공단이 부담하는 법정급여는 61.8%인 20조5,000억원, 본인이 내는 법정 본인부담금은 22.5%인 7조5,000억원이며 비급여 항목은 5조2,000억원(15.7%)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안병재 손해보험협회 상무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가입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복지부에서 추진하는 법정 본인부담금 금지가 현실화되면 국민 부담이 7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법정 본인부담금 보장 제한이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비급여 치료는 고소득층에서 발생하는데 보험사들이 비급여 보장을 중심으로 한 특화상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돼 결과적으로 공사보험의 보완기능이 떨어진다는 것. 이 같은 상품은 보험료가 비싸 서민들이 가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실제로 종합전문병원은 진료비 중 비급여 비율이 32.7%에 달하는 반면 의원은 8.1%에 불과하다. 박한철 생명보험협회 상무는 “민영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금지하면 결과적으로 의료 서비스 약자인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만 늘어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민영의료보험이 비급여만을 보상할 경우 민간의료보험 상품 가입이 위축돼 결과적으로 보험사의 보험료 수입이 줄어들면 비급여 치료비 증가로 보험금 지급이 급증, 보험사의 수지가 악화되고 이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최악의 경우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정액형 상품 위주로 재편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해 공보험의 기능을 보완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총리 주재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제기된 공사보험 간의 역할 설정 논의는 소강상태에 있지만 현재 ‘폭풍 전야’라는 게 보험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정부는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민간의료보험제도개선실무협의회’를 구성한 뒤 6개 실무그룹(working group)으로 나눠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관련법규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민간보험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를 맡은 윤희숙 KDI 연구위원은 “6월께는 중간 결과가 나오고 가을까지는 최종적인 연구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과가 나오면 유예됐던 논의가 재개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전망이다. 보험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사보험 역할 재조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정 본인부담금 금지라는 처방보다는 민영보험이 공보험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통해 공보험 적자를 줄이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공보험 재정 위기는 2000년 직장과 지역 의보를 통합했음에도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민간보험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민영보험이 공보험의 기능을 보완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가 타협안을 내놓은 점은 고무적이다. 복지부가 법정 본인부담금 금지를 내세운 명분은 “본인이 진료비를 한푼도 부담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로 인한 과잉 진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최근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전문연구기관에 의뢰해 도덕적 해이에 따른 의료이용량 억제장치를 마련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법정 본인부담금 가운데 일정 비율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제도(계약자일부부담ㆍco-insurance)를 도입해 의료 이용량을 억제하고 본인부담 의료비 중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금액만 보장하는 제도(자기부담금제도ㆍdeductible)를 도입하자는 것. 예를 들어 이 같은 방안이 도입되면 법정 본인부담금의 70%는 보험사가 보장하고 30%는 본인이 부담하는 상품이나 법정 본인부담금 중 연간 600만원까지만 보험사가 부담하는 상품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복지부가 실증적인 근거도 없이 법정 본인부담금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실증 연구 결과 외래 이용 면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발견됐지만 입원의료 이용에서는 유의할 만한 영향이 없었기 때문에 입원에 대해서는 법정 본인부담금을 보장하고 외래에 대해서는 적정 공제액을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업계와 정부당국이 ‘타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사는 실리를, 정부당국은 명분을 얻으면서 절충을 시도하고 그동안 미비했던 의료 이용량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데이터베이스 확보 후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국가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독일·캐나다등 대부분 허용, 스위스만 "부담 금지" 명문화 선진국에서는 민영건강보험이 국민건강보험(공보험)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대신 부담하는 것을 허용할까. 보험개발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위스를 제외한 8개 회원국이 법정 본인부담금 보장을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입ㆍ통원 치료를 비롯해 치과 치료, 조제비, 재활치료, 재택간병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민영보험이 공보험에서 본인이 내야 할 돈을 대신 보장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ㆍ네덜란드 등은 일부 부문을 제외한 대다수의 항목에 대한 보장을 허용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기초의료ㆍ장기간병 등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대해 민간보험이 본인부담금을 보장한다. 캐나다는 일반ㆍ기초 치료와 특진에 대해서는 금지하지만 모든 비공적 보건 서비스에 대해 전면적으로 민간 부문이 보장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장기간병과 재택간병을 제외한 모든 기타 서비스의 경우 민영건강보험이 공보험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민영건강보험이 공보험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도록 조정된 나라도 있다. 아일랜드는 의료보험증이 없는 사람의 입원 비용과 입원시 특진료에 대한 법정 본인부담금을 보장한다. 미국의 경우 공보험에 해당하는 메디케어를 보완하는 민영건강보험의 역할도 인정한다. 폴란드는 조제비와 장기간병ㆍ재활치료 등 특정 분야에 대해 민영보험이 공보험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대신 부담할 수 있도록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스페인은 조제비에 대해 민영보험의 역할을 인정한다. 스위스만이 기본강제보험에서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에 대해 민영의료보험이 공보험 급여를 부담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거의 모든 OECD 회원국에서 민영의료보험이 공보험을 보완하는 역할을 인정하며 국민들이 공보험에 내야 하는 법정 본인부담금을 민영건강보험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미국과 독일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민영건강보험이 국민의료정책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공보험이 보완하는 형태로 제도화돼 있으며 독일에서는 공보험에서 일정 소득 이상의 부자들에 대한 보장을 제외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공보험의 대규모 적자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민간의료보험이 의료정책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험개발원의 조용운 박사는 "비급여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나라가 민영건강보험의 역할을 인정하며 공보험에 대해서도 법정 본인부담금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민간보험의 역할을 인정한다"면서 "세계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줄이는 탈규제 추세가 일반화되는 데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처럼 정부가 실증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감성적인 판단으로 민영보험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입력시간 : 2007/04/11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