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으로 불리는 카트리나의 위협 속에서 많은 이웃들의 목숨을 구한 한 남성이 관심을 끌고 있다.
뉴올리언스의 한 건설회사 직원인 리처드 오스틴(45)은 할 일을 했다며 미소를 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재민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르고 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5일 보도했다.
휴스턴 애스트로돔에서 다른 이재민들과 함께 대피 중인 오스틴은 자신이 구한아기를 가리키며 "그 때 이 아기는 문이 떨어져나간 냉장고 안에 앉아 물살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기는 물살이 격류로 바뀌며 냉장고가 확 미끄러지자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웃에서 훔친 보트로 48시간 꼬박 인명구조작업을 했던 오스틴과 친구 2명은 31일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이 아기를 발견했다.
아기를 태운 냉장고의 한쪽을 붙잡고 있던 아기의 부모는 자신들은 괜찮다며 아기만 비좁은 오스틴의 보트에 태웠을 뿐이다. 이제 그 부모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오스틴과 동료 루이스 라자드(27), 제리 배스천(18)은 외부의 도움이 미처 뉴올리언스에 닿기 전에 무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오스틴은 "그 때에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누군가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했고, 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작심한 뒤 이를 실행했을 따름이라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카트리나의 위세가 잠잠해진 후 30일 새벽 오스틴과 동네 친구들은 이웃집에 걸려 있는 보트를 가져다 시민구조대를 구성했다. 전부 합쳐 건장한 남성 16명과 5척의 보트로 급조된 구조대였다. 이미 오스틴의 집은 물에 잠겼고, 대부분 집의 1층창문 위까지 물이 불어났을 때였다. 남의 보트를 훔친다는 생각은 이들의 머리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스틴은 식품과 물이 없어 이틀 동안 초콜릿만 먹으며 물살에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을 구해 고지대로 피신시켰다. 구조의 제1원칙은 절대로 사람들만 태우고, 물건은 욕심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노인들을 우선 구조대상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비무장 상태로 구조작업을 시작한 오스틴과 동료들은 도중 무장한 갱들이 보트를 훔치려고 달려드는 일이 생기면서 총으로 무장했다. 그러나 평생 총을한 번도 쏜 적이 없는 오스틴은 다행히 총을 사용할 일이 안생겼다며 안도의 숨을내쉬었다.
그러나 아들과 함께 집에 매달려 있던 한 80대 할머니는 정식 구조대가 오면 대피하겠다며 끝내 오스틴의 보트를 거부했다. 다음날에 다시 할머니를 찾아갔지만,할머니는 구조를 거부했고, 정부의 구조대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고 오스틴은 안타까워했다.
오스틴은 "해안경비대는 31일 낮이 돼서야 비로소 나타났고, 도시 주민 중 절반정도가 그 때까지 대피하지 못했다"며 "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피할 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가족은 안전하게 댈러스에 있는 오스틴은 이제 휴스턴에서 건설현장 일을 찾을계획이다. 그러나 고향 뉴올리언스에 언제나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