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5일] 나세르

[오늘의 경제소사/2월25일] 나세르 중동 현대사에 그처럼 많은 족적을 남긴 사람도 드물다. 자말 압둘 나세르. 아랍민족주의에서 주요 산업 국유화, 제3세계의 세력화까지 그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20세기에 일어난 대부분의 쿠데타는 나세르를 교본으로 삼았다. 석유무기화 가능성을 최초로 언급한 것도 나세르다. 이집트 자유장교단의 리더였던 나세르 중령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952년의 무혈 쿠데타. 왕정을 몰아낸 데 이어 1954년 2월25일에는 상관이자 정적인 나기브 대통령을 가택연금시키고 총리직에 앉았다. 36세의 나세르는 개혁과 근대화의 고삐를 당겼다. 공업의 비중이 10%에도 못 미쳤던 이집트는 현대국가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처음에 기댄 곳은 미국과 영국. 지원 요청이 거절당하자 그는 사회주의로 선회한다. 1955년부터는 저우언라이ㆍ티토ㆍ네루와 함께 아시아ㆍ아프리카의 비동맹중립을 이끌었다. 대통령에 당선(1956년)된 나세르는 아랍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외국자본이 독점하던 은행과 보험사는 물론 수에즈 운하까지 국유화했다. 운하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ㆍ이스라엘과의 2차 중동전에서는 패했지만 국제여론에 힘입어 나세르는 운하 소유권을 인정받는 외교적 승리를 따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민족의식이 고취된 것도 이때부터다. 아랍의 정치적 영웅으로 떠오른 나세르에게는 사람이 몰렸다. 시리아는 합병을 간청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 고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고 아사드 시리아 전 대통령, 고 아라파트 PLO 의장은 나세르 밑에서 공부하거나 성장한 인물들이다. 사라져가는 나세르의 분신들처럼 아랍통일의 염원도 멀어지는 것 같지만 나세르의 잔영은 여전하다. 아랍민족주의는 꺼지지 않는 불씨다. /권홍우ㆍ정치부장 입력시간 : 2005-02-24 18:14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