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설문조사에 지방기업 할일 못한다

지방 기업들이 각종 설문조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기관과 지자체, 상공관련단체들의 설문조사가 홍수를 이루면서 업체들이 정작 업무는 뒷전으로 미루고 급기야 전담직원을 채용하는 등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설문조사 응답 전문직원 채용도=울산공단내 자동차 부품업체인 K업체에는 지난달 무려 10건의 각종 설문조사 의뢰가 쏟아졌다. 국무총리산하 산업연구원의 울산 오토밸리 조성 관련 설문조사를 시작으로 통계청의 월별 광공업동태조사, 무역협회 울산사무소의 자동차부품관련 실태조사, 울산상의의 상공업자 실태 대장조사 등이었다. 설문지 가운데는 10페이지가 넘는 것도 있고 회사의 주요 기밀사항을 묻는 까다로운 질문이 많아 경영진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상당수여서 우편 설문조사 4건은 아예 무시했다. 하지만 결국 담당자는 모든 설문조사에 응해야 했다. 과거와 달리 우편 설문조사의 회수율이 업체들의 기피로 20%를 밑돌자 설문담당자들이 직접 공장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지역 중소업체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체 연구소를 지닌 T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 올들어서만 응답한 설문조사가 20여차례에 달한다. 응답을 거절한 전화 및 우편 설문조사까지 합치면 요청받은 설문조사가 50여차례에 육박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자 이 업체는 올초 아예 설문조사만 전담하는 대졸사원을 뽑았다. ◇업무차질 심각=설문조사는 IMF(국제통화기금)한파이후 급증하고 있다. 기업의 체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방안을 마련한다며 중앙의 관련부서와 지자체는 물론 상의 등 경제단체들이 앞다퉈 설문조사에 나서면서 병폐도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폐혜는 업무차질. 중소업체의 경우 설문조사의 성격상 총무ㆍ자재ㆍ회계관련 질문이 많은데 통상 이들 부서담당자들은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설문조사에 쫓겨 결재와 바이어 상담을 미루고 야근까지 이어지는 날이 부지기수다. T업체 담당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설문조사 관련 전화가 걸려와 중요한 바이어 상담 전화를 놓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며 "해마다 4~5월이면 주당 3일은 설문조사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이를 거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민간 조사기관들의 설문응답 요구는 그렇다치더라도 각종 정책자금과 공장증설 관련 인ㆍ허가권을 지닌 정부 및 지자체 등 소위 '힘있는 기관'들의 설문조사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설문조사 내용 부실도 문제다. 조사기관들이 외부 용역비를 줄이기 위해 임의로 설문지를 만들다 보니 중복 질문이 많은데다 질문항목도 매출액과 생산품 등 기초 업무자료를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심지어 생산품과 전혀 관계없는 설문조사를 요구받기도 한다. 대전의 A벤처업체는 최근 정보통신업체인데도 중기청으로부터 벤처기업 등록을 받았다는 이유로 회사와 전혀 관련없는 각종 전화설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조사기관끼리 사전에 협조, 업무 파악 성격의 설문조사만큼은 두번, 세번 겹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박희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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