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영화 '가을로'를 통해 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사고 경험 있다면 PTSD 의심해 봐야<br>자연재해보다 인재가 후유증 커…우울증·알코올 중독에 빠질수도

영화 '가을로' 의 주인공 세진(엄지원)은 삼풍사고를 당해 극적으로 구출 되었으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회생활에 커다란 장애를 겪는다.

영화속에는 종종 다양한 '질병'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 관람객들을 슬프게 하는가 하면 이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이번주 리빙앤조이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백화점 붕괴사고로 연인을 잃은 슬픔을 담아낸 영화 ‘가을로’속에 나타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집중조명해 본다. ◇공포스런 경험후 찾아오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1995년 서울의 한 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백화점지하의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던 점원 세진(엄지원)은 결혼을 앞둔 민주(김지수)와 함께 흙더미 속에 깔려 서로를 위로하며 구조를 기다리지만 끝내 민주는 죽고 홀로 살아 남는다. 10년후…. 취직을 위해 높은 빌딩안의 면접장에 들어선 세진은 앞 사람이 들어간 후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자 갑자기 호흡곤란과 식은땀을 흘리며 건물 밖으로 뛰쳐 나온다. 세진은 또 교통사고로 인한 혼잡으로 타고 있던 자동차가 터널 속에 갇히자 역시 똑같은 증세를 보이며 차에서 내려 달리며 황급히 터널을 빠져 나간다. 10년이 지났지만 세진은 아직도 붕괴사고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붕괴 후 지하에 장시간 갇혀 있던 경험이 밀폐된 공간을 두려워하는 ‘폐소공포증’을 불러온 것. 이런 각종 재난으로 인한 사고 후유증을 의학적 용어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라고 한다. 김대호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교수는 "문 닫힌 소리에 과도하게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백화점 붕괴 당시의 큰 소음을 연상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며 "터널에 갇힌 것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붕괴사고를 연상시키는 자극으로 작용해 불안반응(호흡곤란, 식은땀)을 일으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PTSD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겪거나 목격함으로써 생기는 질환이다. 붕괴사고 등 천재지변, 살해 또는 심각한 상해 장면의 목격, 성적 학대 및 폭행, 친한 사람의 갑작스런 사망 등의 외상적 사건을 겪게 되면 심한 두려움이나 무력감이 생긴다. 특히 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인재의 경우 자연재해와 달리 원망의 대상이 존재하므로 정신적인 회복을 느리게 할 수 있다. 악몽을 꾸거나, 환각이 생기고, 사고 장면이 갑자기 생각 나기도 한다. 사고 당시처럼 느껴지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 사고를 연상시키는 것을 피할 수도 있으며 잠자기 힘들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분노가 폭발할 수도 있다. 우울증과 술, 담배, 마약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 지난 2003년 대만의 지진 후 가족을 잃은 생존자 120명을 사고 2개월 후에 면접해 연구한 결과 PTSD가 37%, 주요우울장애16%, 적응장애 9%, 기타 불안장애 4%, 알코올 남용 및 의존 3% 등의 빈도로 진단됐다. ◇노출치료, 안구운동 등으로 고친다= PTSD 치료법은 크게 약물치료(항우울제, 항불안제 등 처방)와 정신치료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ye Movement Desensitization & Reprocessing, EMDR)'과 노출치료, 인지치료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노출치료는 환자에게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일부러 두려운 장소에 가게 한다. 이를 12주~18주 동안 단계적으로 반복해 점차적으로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 일종의 ‘면역요법’인 셈이다. EMDR은 노출치료보다 2배이상 치료 기간이 짧아 치료자와 환자의 만족도가 높은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EMDR은 1987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샤피로 박사가 주장한 '자발적인 안구 운동이 부정적이고 기분 나쁜 생각을 감소시킨다'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환자의 안구는 치료자의 손가락을 따라 20초가량 좌우 혹은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게 된다. 환자는 외상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 기억 등을 떠올린 후 안구 운동 중 경험한 이미지나 감정을 말로 하게 한다. 1회당 시간은 90분이며 3회~12회 정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구운동 대신 손가락 두드리기(촉각), 청각, 반짝이는 불 등 다른 자극도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한국EMDR협회에 따르면 강간, 사별, 사고, 자연재해로 인해 생긴 PTSD 질환자 중 84-90%가 단 세 번의 치료로 질환이 완치됐다는 최근 연구결과도 있다. ◇환자본인과 가족 대처요령=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한다. 김대호 교수는 “환자 스스로가 PTSD를 정신질환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큰일을 당한 누구나에게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편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충분히 휴식 후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곧바로 일상 생활로 복귀해야 한다. 되도록 음주는 피하고 통제력이 회복될 수 있는 헌혈, 봉사활동 등을 하면 좋다. 그러나 강한 감정이 한 달 이상 지속돼 고통스러우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환자 가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환자에게 섣불리 충고하기 보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도록 하며 편안히 말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좋지만 이야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또한 PTSD에 대해 충분히 공부한 후 당사자에게 설명해 주는 것도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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