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7월 9일] 진심을 깨우는 시간

최영은(서울화랑큐레이터)

현대 사회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자살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중독ㆍ대인기피 등 다양한 장애로 확대되기도 한다. 소외와 외로움을 그리는 작품들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점은 사회에 외로움이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을 살지만 누구와도 정서적 교감 없이 섬처럼 단절돼 있는 듯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사람과 허공을 향해 몸부림쳐보지만 손잡아줄 곳 없는 고영우 화백의 작품 속 인물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소통의 채널이 증가하고 다양해진 사회에서 왜 외로움과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 어느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은 소통 부재가 아니라 소통 과잉의 나라이며 소통에 필요한 것은 ‘진심’이라고 언급했다. 짧은 시간에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지만 눈과 눈을 마주보고 서로의 진심을 꺼내놓고 들여다보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진심, 즉 정서적 교감 창구를 닫은 상태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뉴스타트 운동의 이상구 박사님도 인간의 참 자아와 거짓된 자아의 간격이 우울증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참이 아닌 모습으로 포장될 때 정체성 혼란을 겪고 우울에 빠지기 쉽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때 거짓 자아를 내세우는 사람은 없다. 작품과 관련된 생각을 안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감상’을 위한 순수한 시간을 주어지고 위장된 자아를 잠시 쉬게 할 수 있다.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자신의 내밀한 정서와 가장 일치되는 작품을 만나는 환희는 자신의 마음과 딱 맞는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긴 수다를 늘어놓는 것처럼 상쾌하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두려움으로 위장된 자신의 모습을 훌훌 벗어놓고 자신의 진심을 깨워 토닥이는 것은 진심이 흐르는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만큼 강해지면 더 이상 두려울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진심의 소리를 홀대하지 말자. 미술이 주어진 틀과 경계를 넘어 세상에 화두를 제시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을 넘어서 개개인의 정서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진심을 소통시키는 창구 역할에도 큰 몫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소통으로의 치유의 물꼬를 터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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