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 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을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정일근의 ‘쌀’에서)
쌀 나무, 벼를 두고 ‘쌀 나무 아니냐’고 물었다는 이야기. 일찌감치 컴퓨터 놀음에 빠져 사물에 대한 종합적 학습기회를 상실한 초등학생들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우스갯소리다. 인터넷 시대가 배태한 신조어 같지만 생겨난 지 십 수년이 지난 ‘고전’이다. 이제 아이들은 모를 내고 김을 매며 벼를 베는 한 해의 정성을 ‘상식’ 아닌 ‘학습’으로 체득하게 된 지 오래됐다는 뜻이다. 아이들로서는 컴퓨터게임을 모르면 당장 ‘왕따’로 고생하지만 농사는 모른다고 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기만 한 것일까. 농사를 모르고는 당장 교과서에 실린 역사조차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국사교과서 앞머리에 실린 벽골제ㆍ수산제로 대표되는 저수지부터 시작해 조선 후기 견종법ㆍ이앙법, 해방 이후 농지개혁에 이르기까지 농업과 관련되지 않은 역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농사가 국사책에 적힌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면 ‘한 과목 포기하면 그만’이겠지만 농경문화에서 유래한 현재 진행형의 문화 역시 고스란히 놓쳐 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상 뉴스에 빈번히 등장하는 24절기는 물론 두레ㆍ향약ㆍ품앗이가 모두 농경문화의 유산임에도 사연을 모르면 고대의 기이한 풍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 바로 곁에 살아 숨쉬고 있는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지각이 가장 절실할 터이다. 이는 학습지ㆍ참고서에 적힌 설명으로 갈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농촌으로 데려가자. 현재 적지 않은 농업현장들이 주말농장ㆍ팜스테이ㆍ농촌민박 등의 체험학습장으로 개방돼 있다. 김매기도 해보고 감자도 캐면서 ‘쌀 나무’가 아닌 ‘벼’를 가르치자. 기름기 흐르는 피자 대신 달짝지근한 강냉이를 간식거리로 안겨주자. 한여름 뙤약볕 아래 곡물이 익어가듯 아이들은 건강한 농촌의 대지 위에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