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허울뿐인 단체·집단소송제

최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한 소비자단체소송제와 지난해부터 시행된 증권집단소송제는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우선 두 제도 모두 종래의 개별소송이 아닌 집합적 소송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일괄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소송형태를 도입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같다. 그리고 두 제도 모두 입법과정에서 이를 도입하려는 시민단체와 남소(濫訴)를 이유로 반대하는 재계간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고 이 때문에 법안 통과에 상당한 세월이 소요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유사점은 두 제도 모두 실효성이 거의 없는 허울뿐인 제도라는 점일 것이다. 증권집단소송제는 도입되자마자 봇물 같은 소송으로 기업 몇 개를 망하게 할 것처럼 여겨졌지만 실상은 도입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소송도 제기된 바 없다. 재계의 무차별적인 남소 주장에 밀려 집단소송을 제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법을 어렵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소송제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이번에 국회 재경위를 통과한 소비자단체소송제는 금전적 피해보상을 아예 소송대상에서 제외한 채 금지명령이나 약관변경 정도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벌써부터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재경위 심의과정 막판에 재계의 반발 때문에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비자단체 수를 1,133개에서 145개로 크게 줄인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원고가 될 수 있는 단체 수를 설령 1만개로 늘리더라도 금전적 피해보상 없이 막대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을 들여가면서 단체소송을 제기할 소비자단체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원고는 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고 법원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며 기업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소송비용조차 보상받을 근거가 없다. 그나마 이런 제도조차 약 2년 후인 오는 2008년 1월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아마도 이 제도의 파급효과 때문에 유예기간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제도가 가진 결함이 너무 빨리 드러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소비자단체소송제와 증권집단소송제는 재계의 엄살과 자질이 부족한 국회의원들의 탁상입법이 결합돼 탄생한 기형적인 제도라고밖에 할 수 없으며 흩어진 공공의 이익(diffused public interests)이 특수이익집단의 집약된 이익(concentrated special interests)에 밀려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액투자자들은 증권집단소송이 도입되면 분식회계ㆍ주가조작ㆍ내부자거래 등 증권사기에 따른 피해를 용이하게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단체소송제의 도입을 계기로 피해가 좀 더 용이하게 구제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기대 역시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모든 거래형태가 집단화ㆍ대중화하면서 점점 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집단적 불법행위가 늘어나고 있고 종래의 피해구제장치로는 더 이상 피해구제가 어려운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영미식 집단소송제나 유럽식 단체소송제도 등 공익소송제도가 확대ㆍ강화되는 추세다. 그리고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 제고와 공정한 시장경쟁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기업들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약자를 대변한다며 출범했던 현재의 집권여당과 정부에는 공익소송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혁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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