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단가 후려치기' 굴레를 넘어

원화 강세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우리나라 제조 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원가 상승 부담을 협력 업체에 전가하는 국내외 대기업들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공세도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대부분의 중소ㆍ중견기업들이 이 같은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중견 자동차 부품업체의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나라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한번 정도 가격 입찰을 하면 납품계약을 따낼 수 있지만 미국 업체들은 4~5번의 입찰을 거쳐 혹독하게 가격을 후려친다”며 “품질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일 뿐이며 경쟁 업체보다 싼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진짜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대형 전자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M사의 김모 사장도 “일본 업체도 올해부터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한 원가 절감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등 납품단가 인하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하소연이다. M사는 기존 제품의 응용 분야를 넓히는 한편 부가가치가 높은 신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엠텍비젼ㆍ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ㆍEMW안테나 등은 카메라폰,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및 휴대인터넷(WiBro) 시대에 보편화될 휴대폰 등 단말기의 핵심 부품을 한발 먼저 개발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처럼 잘나간다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은 불리한 대내외 기업 환경 속에서도 남보다 한발 먼저 시장을 주도할 제품을 개발하거나 싸게, 혹은 고품질로 공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정 대기업에만 기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않으려 애쓴다. 원가를 절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 속에서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경영 혁신 활동을 전개, 10~20% 안팎의 원가 절감에 성공한 기업도 적잖다. 대기업들이 중소ㆍ중견 협력 업체들의 영업 비밀을 ‘강탈’하고 턱없이 단가를 후려쳐 한국 경제가 골병들고 있다는 비판론이 거세다. 한쪽에서는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수천억~수조원의 순이익 잔치가 벌어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지 않는 기업은 ‘단가 후려치기’의 굴레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책도 필요하지만 회사를 합치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든, 해외로 나가든 칼자루는 CEO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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