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행복을 담는 그롯

우리민족의 주거의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정주성(定住性)이다. 수렵이나 유목, 상업같은 생업은 이동을 요구하나 우리 선조들의 생업은 땅을 갈아 농사를 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집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집을 옮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천재지변이나 전쟁, 유배 같은 일이 아니고서는 집을 옮겨가려 하지 않았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벼슬을 하던 사람도 벼슬에 있을 동안은 외지에 머물지만 벼슬이 끝나면 반드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부임육조(赴任六條)치장(治裝)편에는 고을수령으로 부임할 때 지켜야 할 덕목을 `동행자 불가다(同行者 不可多)`라고 했다. 곧 수령으로 부임할 때 가족이나 친지 등을 데려가지 않는 것이 벼슬아치들의 덕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또한 임기가 끝나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이른 말이다. 이희승의 수필에 나오는 남산골 샌님 딸깍발이는 곧은 기개와 지조를 지닌 한국선비의 상징처럼 그려져 있다. 행색이 꾀죄죄하고 남루하지만, 그가 꼿꼿하게 선비정신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도 남산골 둔덕에 자그마한 세칸 초옥이라도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값이나 땅값 등 부동산문제가 야기되는 것도 이런 정주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곧 정주성이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소유의식으로 이어져 이것이 부족한 공급과 맞물려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곤 했다.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새 정부는 12개의 핵심적인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 국정과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을 더욱 편안하고 잘살게 해주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새정부가 내세운 국정과제중의 하나인 삶의 질 향상은 주거의 측면에서 보자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택건설과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이 그 요체다. 곧 공급이나 환경측면에서 모두 집을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졓見?위해서는 무엇보다 주택시장이 민간주도로 바뀌어야 한다. 기존의 관주도 시장구조로는 유달리 집에 대한 소유의식이 강한 우리의 주택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다양한 주거욕구를 수용하기 어렵다. 민간업체간 건전한 경쟁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주택이 `행복을 담는 그릇`으로 제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김문경(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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