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4월 1일] 사회책임투자와 서민금융

합리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오랫동안 경제패러다임을 지배해왔지만 실험경제학의 연구결과를 보면 인간은 언제나 이기적이지는 않아 비경제적 이타주의에 끌려 선택 할 때가 많다. 위험이 따르는 투자선택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전세계적 흐름인 사회책임투자(SRIㆍ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를 보라. 수익과 사회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책임투자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책임의 강요는 자본주의의 부정이라고 일갈하던 밀턴 프리드먼은 설 땅을 잃었다. 사회책임투자 전통이 강한 유럽은 전체 펀드투자의 17%, 미국은 11%가 사회책임투자라는 통계가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더 이상 자산운용 시장의 변방이 아니라 주류가 됐다. 美·유럽등과 비경제적 가치 달라 투자전략도 정교해졌다. 비윤리ㆍ반인권ㆍ반환경 기업을 단순 배제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사회책임요소를 식별, 가치평가로 통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투자대상도 사회통합의 주요 의제인 서민금융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사회책임투자와 서민금융을 별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나 둘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서민금융은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소액대출 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도 후진국 못지않은 서민금융의 역사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이나 미국 서민금융기관들은 모두 지난 1970년대 생겼으며 금융 소외자에게 제공되는 소액신용이라는 점도 차이가 없다. 서민금융기관에 사회책임투자가 흘러든 시기는 2000년대 즈음이다. 선진국 사회책임투자 자금이 후진국 마이크로크레디트와 선진국 서민금융기관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책임투자와 서민금융이 결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수익 모델이 검증됐다. 자본주의화가 덜된 후진국 서민에게 강하게 남아 있는 공동체주의를 모니터링시스템에 통합한 독특한 금융 모델을 바탕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금융의 민주화와 수익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마이크로크레디트에 투자하는 다양한 투자기구를 만들어 자금을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성숙한 국가에서도 후진국의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잘 작동할지는 의문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핵심인 강한 공동체적 연대가 선진국의 개인주의 토양과 잘 조화되리라는 확신이 없다. 때문에 선진국의 서민금융은 보다 정교한 시스템적 요소들을 갖출 필요가 있다. 후진국은 공동체적 가치가 시스템의 필요성을 낮추지만 선진국은 미약한 공동체 자산을 유인부합적인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 시스템 면에서 미국과 유럽의 서민금융은 상당히 다르다. 미국은 법이 군림하는 규제형 서민금융시스템인 반면 유럽은 비규제형 시스템이다. 미국에는 지역재투자법이 있어서 기관투자가들의 사회책임투자 성과가 감독 당국의 평가대상이지만 유럽은 그런 법이 없다. 공적기금을 조성해 기관투자가와 공동투자를 하고 위험을 일부 분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유럽의 사회책임투자가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유럽적 평등주의 전통이나 경제사회통합의 강한 의지 등 비경제적 가치들이 자유주의 미국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특화 서민금융기관 키워야 그렇다면 우리에게 맞는 서민금융시스템은 무엇인가. 후진국의 마이크로크레디트나 유럽 혹은 미국 모델을 우리 실정에 맞게 현지화하자. 특화서민금융기관을 키우고 공적기금이 모태펀드처럼 그곳에 후순위 투자하면 사회책임투자가 따라올 유인이 생긴다. 미국은 공적기금 1달러가 민간자금 27달러를 유인한다. 아울러 기부 개념도 바꾸자. 기부를 거저 주는 것에서 이자를 조금 덜 받고 사회책임투자를 하는 '돕는' 개념으로 이해하자. 투자의 1%를 특화서민금융기관에 맡기고 정부가 일정액의 세제혜택을 주는 구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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