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시절 이라크 정부로부터 받지 못한 빚은 현대건설의 11억달러를 비롯 모두 17억달러에 이른다. 이라크의 대외부채는 모두 1,200억달러 규모인데 이중 1,000억 달러이상이 공공채권이고, 민간채권은 150억달러인데 그 중의 10% 정도가 한국기업의 채권인 셈이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후 이 빚의 처리문제를 놓고 채권국간에 물밑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채무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강경파를 중심으로 이라크의 채무를 탕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라크의 경제상태에 비추어 탕감의 불가피성은 인정되지만 탕감의 규모나 비율은 빚의 성격에 따라 결정돼야 하리라고 본다. 대부분 사담 후세인의 정권유지를 위해 제공된 공공차관에 포함된 군사차관과 같은 악성채권은 탕감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비해 민간상업채권은 주택 도로 전기 등 인프라 시설공사 대금과 물자ㆍ기자재 등의 수출대금이다. 이것은 악성채권으로 간주해 탕감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특히 현대건설의 공사대금 11억달러는 이라크 재무성의 채무확인을 받은 약속어음 상태의 채권으로, 국제외환시장에서 매각됐다가 이라크 정부의 지급불능 사태로 현대가 대납한 채권이다. 현대건설은 이 채권회수를 위해 미국에서 미수금지급소송으 제기해 승소했고, 영국서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이 채권은 1980년대까지 별 탈없이 회수되어오던 중 1990년 걸프전과 관련해 미국이 이라크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함에 따라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됐던 것이다. 채무조정 과정에서 이 같은 채권의 성격과 배경은 충분히 감안돼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채권회수를 위해 현대를 비롯한 민간 채권기업들이 워싱턴클럽이라는 협의체를 결성해 미국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탕감불가 및 채권회수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문제로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라크의 정정이 갈수록 혼미해지고 있어 파병의 규모나 성격을 규정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정부가 일단 파병결정을 내린 만큼 약속은 이행돼야 하리라고 본다. 이라크 파병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국익이라고 할 때 민간 기업들이 억울하게 떼인 빚을 받아주는 것도 중요한 국익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현대건설이 채권단 관리회사로 전락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라크 미수금에 원인(遠因)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미수금 회수가 갖는 의미는 더욱 각별한 것이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