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놓고 정부와 재계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재계는 「청산 또는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계열사만 보유, 조만간 단독기업으로 전환될 그룹도 기업집단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 제도의 폐지 또는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제도상의 문제점은 인정하지만 총선 후 재벌개혁 등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재벌의 경제력집중 완화, 선단식경영 차단 등 재벌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지난 17일 올해 30대 기업집단을 지정,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전경련의 주장대로 올해 새로 30대 기업집단에 포함된 일부 그룹이 계열사간 상호 지급보증이나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를 받을 성질의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올해 30대 집단에 신규 진출한 ㈜대우의 경우 지난해 랭킹 2위였던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개발과 함께 독립 기업집단을 구성, 올해 순위 7위에 올랐다. ㈜대우 그룹은 유일한 계열사로 대우개발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대우개발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화교기업 CDL에 서울 힐튼호텔을 매각한 후 현재 경주 힐튼호텔만 운영하고 있고 오는 5월 중 합작파트너인 퍼시픽인터내셔널에 법인매각될 예정이다. 지난해 쌍용그룹에서 분리돼 올해 18위 기업집단에 오른 에쓰오일(옛 쌍용정유)도 비슷한 케이스. 에스오일의 유일한 계열사인 범아석유는 현재 청산절차가 마무리되는 단계에 있다. 결국 ㈜대우와 에쓰오일은 조만간 계열사가 없는 단독기업이 된다. 이 경우 2개 이상의 회사로만 기업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는 공정거래법에 배치돼 두 그룹은 조만간 대기업집단에서 탈락해야 할 처지다. 또다른 문제점은 워크아웃 대상기업과 법정관리 기업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다. 올해 신규 지정된 ㈜대우·동아·고합·대우전자·아남·진로 등 6개 그룹이 이 범주에 포함돼 있다. 숫자상으로 전체의 5분의1에 해당한다. 경영권이 사실상 채권단이나 법원에 넘어가 있는 그룹을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것은 재벌의 경제력집중 완화, 선단식경영 차단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이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30대 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간 상호 지급보증이 금지되고 부당 내부거래 조사의 대상이 되며 내년 4월부터는 출자총액 제한까지 받는다. 공정거래법 외에도 15개 법령의 규제대상이 된다. 재계는 외국기업들이 국내시장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시장경제체제가 지배하는 시대에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축소 또는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공정위가 이 제도를 고수하려는 것은 부처 이기주의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냐며 의아해하고 있다. 이와 관련, 손병두(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시대변화에 맞게 30대 그룹 지정기준을 자산보다는 순익이나 현금흐름 상황에 맞추는 게 합리적』이라며 『기업에 대한 직접규제보다는 외부감사제도와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은 『출자총액 한도제의 기초는 30대 그룹 지정제도』라며 『지난해 법정화된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후퇴시킬 수 없다』고 못박았다. 강대형(姜大衡) 공정위 독점국장은 『재벌 총수에 의한 선단식 경영과 차입경영 등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5대 이하 중소그룹은 자산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부채비율이 높고 부실기업도 많아 관리가 필요하다』며 재계의 주장을 일축했다. 구동본 기자DBKOO@SED.CO.KR 입력시간 2000/04/23 20:02

관련기사



구동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