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을 읽다 보면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한해 동안의 정책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그 정책의 일관성과 철학에 관한 것들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의 일관성과 철학의 중요성은 한 국가의 운영에서뿐만 아니라 시장의 운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에서 시장관리자가 뚜렷한 소신이나 철학 없이 시장을 운영한다면 이는 자칫 망망대해에서 항해지도 없이 승선자들이 가자는 대로 이리저리 헤매는 배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 소신과 철학도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효율적 가격발견 기능을 가진 시장조성과 투자자보호와 같이 다소 상충관계가 있는 목적을 가진 시장규제는 어느 한가지 철학과 소신만을 고집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탈규제화(deregulation)'에 대한 논의다. 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는 시장 메커니즘을 방해한다. 그러나 탈규제화라는 철학만을 모든 시장운영에 적용한다면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의 경우 우회등록 기법의 일종인 역합병(Reverse Take-Over)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우회등록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자율적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된다는 주장을 가끔 접한다.
그러나 선진금융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금융발전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시장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한 토대가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그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잘못하면 건전한 M&A를 위한 토대마련이 아니라 머니게임의 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같이 한 제도나 규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금융시장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선행되고 유연하게 적용될 때만 그 본래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란 도둑이 나그네를 자기 집 침대에 눕혀 나그네의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몸을 잘라 죽이고 키가 짧으면 몸을 늘여서 죽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가지 철학만으로 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시장운영에 적용하려 한다면 자칫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와 같은 일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정의동<코스닥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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