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3월 29일] 영화 '추격자'를 보고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요즘 극장가를 흔들고 있다. 힘 없는 여성들만을 골라서 이유 없이 살해하는 한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다. 벌써 400만을 휠씬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이렇다 할 문제작이 드문 한국 영화계의 현실에서 일단 반가운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영화 외적인 현실로 눈을 돌릴 때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냉혹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안양시 초등학생 실종 살해사건의 피의자 정모(38)씨가 구속돼 현재 범행동기 및 여죄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전직 유명 프로야구 선수였던 이호성씨가 일가족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벌써 영화 속 내용과의 유사성을 문제 삼아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 한편에서는 우리나라가 벌써 10년째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없어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받은 것이 강력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고 보고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김문수 경기지사는 사형판결을 내려놓고도 형 집행을 안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평론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처럼 잘 만든 한국영화 ‘추격자’를 보고 여러 가지 상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내용을 살펴보자. 이 영화는 제목에서 풍기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용의자가 조기에 체포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용의자는 경찰의 심문에 순순히 응해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하지만 용의자의 자백을 허투루 들은 경찰은 체포영장 만료와 함께 그를 풀어주고 만다. 한편 경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용의자를 추격하던 민간인 신분의 주인공은 그의 범죄사실을 입증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결국 경찰의 수사망을 벗어난 용의자는 이전처럼 버젓이 연쇄살인을 자행하는 것이 ‘추격자’의 주된 내용이다. 안양시 초등학생 실종 살해사건의 수사내용을 보면 피의자 정씨는 그 이전에 발생한 각종 부녀자 실종 사건들과 모종의 연관성을 지닌다고 한다. 실제로 경찰은 한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그를 심문한 적도 있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방면했다. 만약 그때 경찰이 보다 신중하고 철저하게 정씨를 수사했더라면 두 어린이의 참극(慘劇)은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 와서 그러한 지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터이다. 단지 영화일 뿐인 ‘추격자’에서도 갓 풀려난 용의자가 곧바로 제2, 제3의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면서도 복창이 터질 듯 했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요점은 이런 것이다. 폭력범죄를 다룬 영화가 모방범죄를 부추긴다는 상투적인 비판을 하기는 쉽다. 아무리 영화의 폭력성이 심하다고는 하나 현실의 그것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니 이를 역으로 생각해 허구의 세계를 다룬 영화를 통해 우리는 현실을 반추하고 나아가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추격자’에서 감독이 말하려고 한 교훈도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방심(放心)은 금물이라고. 사형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이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그렇다. 패륜적 범죄자를 응징하자는 보복적 차원에서 나온 주장이라면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0년의 공든 탑을 허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현실적인 대처방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괴범죄 수사전담반이 부재한다고 들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일단 유괴사건이 터지면 연 수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것이 더 예산절감의 효과가 있다는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범죄자를 처단한다고 희생자가 생환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 부분에 대한 공권력의 집중적 관심이 요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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