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법조이야기] 88년 대법 "차명계좌는 명의자 소유"

금융자산 은닉 관행에 큰 영향아직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은행거래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돈을 자신의 것으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혹시나 하는 심정이어서인지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이름을 이용하여 금융거래를 해오다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일선 법원은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한 계좌의 실제 출연자(出捐者)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누구를 예금주로 볼 것인가를 놓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 왔다. 그러나 대법원이 1988년7월1일 남의 이름을 빌린 차명 예금계좌의 소유권은 실제 예금주가 따로 있어도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그 동안 엇갈렸던 일선 법원의 판단을 통일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시 부산 수영구 수영동에 살고 있던 이 모씨는 지난 95년 5월30일 은행거래 실적을 높여 달라는 사채업자 김 모씨의 부탁을 받고 민 모씨 명의로 부산은행 감천동 지점에 통장을 개설, 3억원을 예금했다. 예금주로 되어있던 민씨는 다음날 은행을 찾아와 은행창구 직원에게 예금청구서를 제시하고 이 돈을 인출해 해외로 도피해 버렸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눈치 된 이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 했다. 부산지법과 고법은 이씨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해 부산은행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제3부는 6일 이모씨가 부산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심과 달리 이 돈은 주인은 이씨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의 주심은 송진훈 대법관이 맡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예금 거래자가 금융기관과 예금 명의자가 아닌 자신이 예금에 관한 채권을 갖기로 하는 명시적ㆍ묵시적 약정을 맺지 않는 한 주민등록증으로 실명 확인을 한 예금 명의자를 예금주로 보는 것이 합당하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명령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실명이 확인된 경우에만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실명제의 근본 취지에 따라 차명계좌는 보호 받을 수 없다는 것이어서 차명으로 금융자산을 은닉하는 관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명제 이후 예금계좌의 실제 주인과 명의자가 다를 경우 누구를 예금주로 볼 것인가를 놓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 100여건이 재판에 계류 중 이어서 앞으로의 판결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됐다. 또한 이 판결이 선고된 뒤 타인 명의로 예금했거나 보관시켰던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이 눈에 띄게 늘기도 했다. 당시 일선법원에는 유사 소송이 잇따라 제기 되기도 했다. 윤종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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