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도심 '마천루 농장' 新농경시대 연다

미국 과학자, 고층빌딩서 농작물 수경재배·가축 사육 고안<br>30층짜리 하나면 첨단기술로 5만명분 식량 생산 가능<br>친환경 설비·유통과정 축소 장점… 막대한 건설비가 과제


마천루농장은 식량난을 해소하면서 엄청난 양의 지구온난화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농경법이다.

미국 에너지테크사의 하수재활용장치는 100톤의 하수로 19㎿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오늘날 농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농업기술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 반해 수확은 적어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힘들다. 특히 일부에서는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증산 속도를 추월, 극심한 식량난이 야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최근 '마천루농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도심의 고층빌딩에서 다양한 농작물과 축산물, 그리고 해산물을 길러내는 마천루농장은 30층짜리 빌딩 하나로 5만명분의 식량을 반(半)영구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또한 도시 하수를 이용해 물과 전기를 얻기 때문에 환경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1세기형 新 기아민의 출현 고전학파 경제학의 거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는 1798년 '언젠가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증산 속도를 추월해버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몇몇 전문가들은 200년 전의 이 예측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금껏 인류를 먹여 살렸던 농업기술 현대화의 힘이 한계에 달해 미래의 인류들이 먹을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 현재 67억명 수준인 세계 인구는 오는 2025년께 80억명, 그리고 2050년께는 92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인류는 이미 지구가 보유한 땅의 41%, 작농이 가능한 토지의 80%를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농업기술은 에너지 사용량은 증대되는 데 비해 산출량은 사실상 정점에 달해 있다. 여기에 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중서부, 아프리카 등 대형 곡창지대에는 앞으로 지속적인 가뭄 피해가 닥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바이오디젤 등 대체에너지 생산을 위해 대량의 곡물이 소비되고 있는 것도 불안 요소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향후 수십년 내 돈이 있어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신(新)기아민들이 출현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환경과학자 딕슨 데스포미어 박사는 최근 이 같은 사태를 막아낼 혁신적 해법을 제시했다. 도심의 고층빌딩에서 각종 농작물과 수산물, 그리고 축산물을 재배하는 '마천루농장(skyscraper farm)'이 그것이다. #도심 속 첨단 실내 농경지 농경지가 층층이 수직으로 전개돼 있다고 해서 '버티컬 팜(vertical farm)'으로도 불리는 마천루농장은 지난 1999년 데스포미어 박사가 처음 개념을 정립한 농경시스템이다. 농경지를 고층빌딩 안으로 옮겨온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한정된 공간에서 토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이 아이디어의 핵심이다. 전통 농경법은 1만㎡의 땅에서 1만㎡의 농지밖에 얻을 수 없지만 마천루농장은 빌딩의 층수를 높여 동일한 면적에서 수십 배 이상 많은 농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천루농장이 단순히 건물 바닥에 흙을 깔고 작물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 빌딩 내부에는 흙이 없다. 대신 모든 농작물은 물과 수용성 영양분의 배양액을 활용한 수경재배로 키워진다.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면서 산출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수경재배는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정통 농경의 30배에 이르는데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실내 농경지인 마천루농장은 빛ㆍ온도ㆍ습도ㆍ영양분 등 모든 조건을 최적의 상태로 제어할 수 있어 이보다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 특히 캐나다의 오메가가든사가 개발한 원통형 수경재배장치를 사용하면 재배 대상 작물을 대폭 늘릴 수 있다. 이 장치는 원통 내부에 질석(蛭石)이 채워져 있어 감자ㆍ감귤나무처럼 반드시 흙이나 코코넛섬유 등 반(半)고체물질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작물의 수경재배도 가능하게 해준다. 층별로 전혀 다른 환경 구현이 가능한 만큼 인근지역주민들의 식습관에 따라 곡식ㆍ과일ㆍ야채에 더해 어패류나 닭ㆍ돼지 같은 가축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은 마천루농장의 최대 메리트다. 데스포미어 박사는 "마천루농장은 계절과 날씨ㆍ자연재해ㆍ병충해로부터 안전해 수확량의 변동 없이 안정적ㆍ반영구적 생산이 가능하다"며 "한 블록 정도의 30층짜리 빌딩 하나면 5만명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기, 난방등 모든 자원 자체 조달 마천루농장은 많은 농학자들로부터 인류의 농지난과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소시켜줄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마천루농장의 진정한 가치는 이 같은 표면적 모습이 아닌 그 속에 구현될 첨단과학기술로 더욱 빛난다. 실제 마천루농장은 전자동 컴퓨터 재배시스템, 하수재활용시스템, 태양열ㆍ풍력ㆍ메탄발전시스템, 증발산(蒸發散) 회수시스템 등 현재 구현 가능한 최첨단기술의 집약체나 다름없다. 이 중 핵심은 하수재활용시스템으로 미국 애틀랜타 소재 에너지테크사에서 개발한 슬러리카브(Slurry Carb)라는 기계를 활용하면 빌딩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과 전기를 자가생산할 수 있다. 이 장치는 인근 도시로부터 공급받은 하수에 열과 압력을 가해 탄소침전물연료와 물을 얻는다. 탄소침전물은 증기 터빈을 돌려 전기와 난방열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물은 홍합ㆍ참억새 등 생물정화장치를 거쳐 음용수나 농업용수로 만들어진다. 특히 슬러리카브를 활용하면 100톤의 하수로 19㎿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만일 물이 부족하다면 식물의 잎이나 수경재배용 물에서 증발된 수증기를 포집ㆍ정제하는 증발산 회수시스템이 이를 충당해준다. 또한 빌딩 옥상에 설치된 풍력ㆍ태양열발전기, 그리고 가축 배설물과 음식물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메탄발전기에 의해 추가적인 전력 및 난방열이 공급된다. 이렇게 마천루농장은 전기ㆍ난방ㆍ식수ㆍ농업용수 등 빌딩 운영과 경작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자원의 자체 조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빌딩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셈이다. #환경과 식량난 두마리 토끼 잡아 이외에도 마천루농장에는 다양한 친환경기술들이 접목돼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경재배장과 양어장을 통합한 수경재배재순환장치. 물고기의 배설물을 수경재배 거름으로 쓰고 수경재배장의 채소가 물을 정화시켜 양어장에 공급하는 것이 기본 메커니즘이다. 다시 말해 잦은 영양분 공급이 필요한 수경재배와 지속적으로 물을 갈아줘야 하는 양어장의 단점을 서로 보완해 해결한다는 개념이다. 민물고기인 틸라피아를 기르는 원형 유수풀 위에 채소 트레이를 띄우는 이스라엘 오거니테크사의 순환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스템은 틸라피아의 배설물을 분해, 질소가 풍부한 물을 채소에 공급하고 이 채소가 물을 정화하는 형태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천루빌딩은 소비자인 도시민들의 거주공간에 위치해 있어 소비시장까지의 운송비 부담이 적고 운송 과정의 공해 배출도 크게 낮출 수 있다. 사실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고 운송할 때 생기는 공해물질, 가축이 뿜어내는 메탄가스 등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나 된다. 마천루농장은 식량난을 해소하면서 엄청난 양의 지구온난화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농경법인 셈이다. 물론 마천루농장의 건설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부지 문제는 차지하고라도 건설비용만 최소 2억~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스포미어 박사에 따르면 시카고ㆍ라스베이거스ㆍ시애틀ㆍ뉴욕 등 미국 내 주요 대도시들과 중국 동탄, 아부다비 등 세계 여러 도시들이 마천루농장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인천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 마천루농장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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