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미 의회와 한미 FTA

올 들어 CNBC 등 미국 경제채널에 의회청문회 광경이 보도되는 횟수가 부쩍 많아졌다. 올해 초부터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의 경제ㆍ통상 분야 위원장들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다른 국가들의 불공정무역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한다. 부시 행정부 관료들을 앞에다 앉혀놓고 사상 최대에 달한 무역적자, 환율 불균형, 해외시장 접근제한 등을 윽박지르는 이들 의원의 모습에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실망과 노기가 짙게 배어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조용한 협상’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의회는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는 듯 행정부에 더욱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닥달하고 있다. 결국 행정부는 중국이 철강, 정보기술(IT), 목재 제품에 대해 부당한 보조금을 지불하고 세제혜택을 준다는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강공책을 내놓았다. 이미 의회에는 중국의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 제조업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에 대해 20% 이상의 보복관세를 물려야 한다는 법안이 상정돼 있는 상태인데 언제든지 수면위로 다시 떠오를 태세다. 일부 월가(街) 글로벌 경제 이코노미스트들이 양국간 경제밀월 관계가 끝나고 ‘무역마찰’의 신호탄이 켜졌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의회의 입장변화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의회의 입김에 못 이겨 미 행정부는 말레이시아가 이란과 추진 중인 천연가스 개발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FTA 협상을 그만두겠다고 말레이시아에 으름장을 놓았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내정간섭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FTA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강하게 맞서고 있지만 미 의회는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중남미 국가들도 미 의회의 지나친 보호무역 조치에 당황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미 의회는 중남미 국가들에 노동과 환경보호 조항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급기야 미 행정부는 이미 FTA를 체결한 파나마ㆍ페루 등에 재협상을 추진하자는 촌극까지 빚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워싱턴에서 한미간 FTA 7차 협상이 열린다. 무역구제와 자동차ㆍ의약품 등 미해결 쟁점사항에 대해 미 의회의 입김을 반영해야 하는 미 행정부로서는 초강경방안을 내놓을 것이 분명하다. 합리적인 거래를 통한 FTA 타결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협상타결을 위한 협상은 피해야 한다. 보호무역으로 무장한 의회를 등에 업은 미 행정부의 시장개방 요구를 면밀히 검토하고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뒤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라면 양국간 FTA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협상타결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탈출카드’도 서서히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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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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