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사사(社史) 유감

“20년 이상된 사료(史料)는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퇴직 임원들의 구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창립 50주년 기념 사사(社史)를 준비하고 있는 한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의 말이다. 반백년 기업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몇 달째 문서창고를 오가고 있지만 사료적 가치가 있는 설립 초기 정관이나 등기부등본 등을 건지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반년째 전현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료를 모으고 있지만 사사 담당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빛바랜 사진 몇 장에 불과했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사사 편찬 과정에서 이 같은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 70년대나 80년대 인수합병 과정을 거친 기업이나 외환위기 이후 청산, 또는 매각된 기업은 문서나 기록을 아예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사사 편찬 담당자는 전직 임원을 찾아 옛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중요한 사료 수집 방법이라고 토로한다. 그나마도 전직 임원이 생존해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미 세상을 뜬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한 기업이 발간한 사사는 기업의 역사서라기보다 공장건설사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엉성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도요타 등 선진기업은 기록문화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사료를 챙기고 있다. 100권짜리 100년사를 발간한 도요타의 경우 별도의 사료관리팀이 체계적으로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보관 3년 동안 보지 않는 서류라도 문서창고에 차곡차곡 정리된다. 미쓰이조선은 50년 전 회장이 작성한 설계스케치가 원본 그대로 보존돼 있을 정도이다. 국내 기업도 더 이상 늦기 전에 사료적 가치가 있는 각종 자료를 모으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힘써야 할 때가 왔다. 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모든 자료와 기록을 보존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문서와 사진, 시제품 등은 조그만 관심만으로도 기업의 역사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사의 내용면에서도 국내 기업은 대부분 성공 사례만 나열하고 있다. 실패를 겪지 않은 게 아니라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용비어천가식으로 최고경영자의 성공담에 치우치다 보니 사사가 한 개인의 평전으로 비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제는 실패를 자랑스럽게 담은 사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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