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스타가 그립다

강창현 <문화레저부장>

미국 프로골프투어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파3 16번홀. 월드 스타 타이거 우즈에게 4번째의 우승컵을 안겨준 환상적인 ‘칩인 버디’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티샷이 그린을 넘어 왼쪽 에지에 떨어져 파로 막기도 힘든 상황. 우즈는 칩샷으로 깃대 위쪽에 볼을 떨어뜨렸고 경사진 그린에서 볼은 정확하게 90도로 꺾이면서 홀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컵 앞에 잠시 머무르다 그대로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타이거 우즈라는 걸출한 스타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는 샷이었다. 스포츠, 사회적 폭발력 커 스포츠의 사회적 폭발력은 엄청나다. 이 때문에 역사 속의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통해 그들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이에 못지않다. 구성원들을 즐겁게 만들고 그들에게 삶의 활력소와 대리만족도 준다.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스포츠 스타들을 바로 ‘우리’와 동일시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2 월드컵, 온 나라가 붉은 악마들의 물결로 휩싸일 때 벽안의 히딩크는 한국인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의 골 세리머니는 모든 국민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히딩크뿐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한국인들을 기쁘게 만들고 흥분시킨 스타들이 적지않다. 환란으로 온 국민이 지쳐 있었던 98년 박세리는 US여자오픈에서 발목을 걷어부치고 헤저드에 들어가 볼을 쳐냈다. 그의 통통한 종아리가 여느 미스코리아의 각선미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박세리는 갑작스러운 외환 쇼크에 갈팡질팡하던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비쳐주었다. 박찬호가 LA다저스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는 웬만한 샐러리맨들은 그의 경기가 있던 오전 시간대가 되면 좌불안석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롭게 케이블TV를 장만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날 정도였다. 이승엽이라는 걸출한 국내 스타도 있었다. 이승엽은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는 홈런 레이스 펼치면서 ‘여비’돌풍을 이어갔다. 스타들은 그들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준다. 그들은 어려운 역경을 딛고 그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스타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스타는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 강한 승부근성, 집념, 끈기, 지혜 등 모든 긍정적인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팬들은 그들과 비슷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스타들을 찾기 힘들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눈에 확 띄는 스타가 보이지 않는다.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 받는 박주영, ‘세계화 된 미드필더’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PSV 에인트호벤의 박지성이 스타대열에 들어섰지만 과거처럼 폭발력을 가지고 있게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지독한 ‘실업병’이다. 고용 없는 성장에 밀려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하릴없이 새로운 이정표를 찾고 있다. 불굴의 도전정신 배워야 청년실업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프리터(Freeter)족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하루에 채 5시간도 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만번 이상이나 이력서를 냈지만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이들은 스포츠 스타들의 강한 승부근성과 불굴의 도전정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거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스타들의 부활을 기대한다. 그들의 오뚜기 정신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뿐 아니라 온 국민들의 삶에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역경을 딛고 정상에 서는 새로운 스타들이 줄줄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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