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잡한 심경이다. 하지만 기업경영이 정상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검찰에 소환된 20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특히 아침 일찍부터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나가 정 사장의 소환을 지켜본 주요 임원진은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향후 검찰 수사의 방향타를 가늠해보는 등 대책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19일 밤 김동진 부회장의 긴급체포에 이어 정 사장의 소환까지 이뤄지면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며 “검찰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현재로서는 최근 잇따라 차질을 빚고 있는 (그룹의) 주요 사업을 착실히 챙기면서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 수사의 방향과는 관계 없이 19일 대국민 사과 및 사회공헌 방안 발표를 계기로 경영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인식 아래 국내외 사업을 재점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룹의 노력과 달리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착공식은 또다시 연기됐다. 당초 지난달 27일 열릴 예정이던 착공식은 최근의 사태로 오는 5월10일로 1차 연기됐지만 정 사장의 소환으로 CEO가 참석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무기 연기될 형편이다.
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일단 18일 미국 측에 착공식 연기를 요청했다”며 “추후 협의를 통해 다시 날짜를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지금까지 조지아주 공장을 계획단계에서부터 진두지휘했으며 올 하반기 완공 예정인 슬로바키아 공장의 건설도 주도해왔다. 기아차 관계자는 “미국 조지아주 공장과 슬로바키아 공장은 정 사장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혼신의 힘을 쏟아온 프로젝트”라며 “이번 사태로 중대한 차질이 생길 경우 기아차는 물론 그룹 전체 글로벌 경영의 밑그림이 흔들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현대차 중국 제2공장의 경우 우여곡절 끝에 정몽구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대로 착공식이 열렸지만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다음달 중순으로 계획된 현대차의 체코 노소비체 공장 착공식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현대차그룹의 주요 해외 프로젝트가 장기간 표류하는 등 큰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중국에서 귀국한 정 회장은 이날 평소처럼 아침 일찍 회사로 나온 뒤 TV를 통해 아들인 정 사장의 소환을 지켜봤으며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다만 최근 중국 출장 등을 전후해 마음고생이 심해서인지 안색이 매우 나빠지는 등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