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징역 6월'은 '6월달 한달을 징역형에 처한다'는 뜻?

'쉬운 판결문 쓰기' 앞장서는 이균용 판사

"`징역 6월'이 아니라 `징역 6개월'로 해야 올바른 표현이죠" 서울북부지법 형사11단독 이균용(43) 부장판사의 판결문은 다른 판사의 판결문과는 상당부분 차이가 난다. 이 판사는 자신이 맡은 재판의 판결문에서 법조계의 관례적 표현인 `징역 ○월'을 쓰는 대신에 `징역 ○개월'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는 "그동안 틀린 표현이 계속된 이유는 법조문 자체에 `징역은 ○월 이상' 등으로 표현됐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이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법전에 그렇게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아닌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법률 문장이야말로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국어문법에도 맞는 쉬운 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전에서 모든 근거를 찾는 시대는 지났으며 중요한 것은 법을 바라보는 자세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시 26회 출신으로 198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 판사는 1994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1년간 연수하면서 일본의 사법개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역 ○월'이라는 표현을 써왔다는 것. 그러나 형을 선고받는 피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징역 6월'이라는 선고를 `6월달 한달을 징역형에 처한다'거나 `징역 10월'을 `10월까지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등 오해의 소지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일본 법조계는 1993년 `형사판결서에 관한 집무자료(1993ㆍ동경지방재판소)'를 펴내고 `징역 ○개월'로 표기를 바꾸는 등 일선 판사들이 실무에서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문법에도 맞는 판결문 쓰기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판사는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일본처럼 쉽고 문법에 맞는 판결문을 써봤는데 당시 주변에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며 "결국 올 3월 단독 부장판사로 발령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쉬운 판결문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쉬운 판결문 쓰기'는 단지 문장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추구하는 이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국민을 바라보는 법관의 자세가 달라지면 작은 단어 하나를 사용하는데도 태도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의 `형사판결서에 관한 집무자료'와 서울중앙지법이 발행한 `판결서간이화 사례집'의 머리말을 보면 판결문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하게 대비된다고 이판사는 지적했다. 일본의 `형사판결서에 관한 집무자료'에는 "어려운 형사판결서는 시대요청에 따라 개선돼야 한다. 열린 법원, 이해하기 쉬운 재판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이해하기 쉬운 판결서의 필요성에 따라 실무 지침서를 발행한다"고 돼 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이 1998년 발행한 `판결서 간이화 사례집'의 머리말에는 "법관들의 업무를 줄이기 위하여…(중략) 지침서를 발행한다"고 돼있다는 것. 이 판사는 "우리나라에는 `간결하게 쓰라'는 기술적 지도는 있지만 어떤 방향성이나 이념이 없다"며 "`국민에 다가가는 열린 법원'이라는 이념이나 철학없이 간결성만 강조하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주변 판사들에게 자신의 지론을 편다. 그들도 이 판사의 얘기에 대체로 수긍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판사는 "일본의 법정에서는 재판 전에 판사와 피고ㆍ방청객이 서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면서 "사소한 일이지만 법원이 권위를 버리고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바로 사법신뢰를 쌓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법원이 국민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작은 실천이지만 `쉬운판결문 쓰기'를 계속해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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