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특별인터뷰] 스탠리 피셔 전IMF 수석부총재

"한국, 세계경제 침체 불구 잘 극복할 것" "5년전에는 미국과 세계 경제가 호황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미국 경제가 아주 어렵다는 점이 다릅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5년간 과감한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정부 재정도 건실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갈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가가 폭락하고, 경기가 둔화하는 지금의 상황은 5년전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와 비슷하다. 그러나 지난 97년 11월 구제금융을 전제로 한국 정부와 협상을 벌였던 스탠리 피셔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현 시티그룹 부회장)는 한국 경제를 낙관했다. 그에게 당시 서울경제신문이 특종 보도한 IMF 구제금융협상 기사를 보여줬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IMF 위기 5주년을 맞아 맨해튼 시티그룹 본사에서 그를 만나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짚어보고, 당시를 회고해 보았다. >>관련기사 -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한국 경제 변화를 말씀해주시지요. ▦지난 5년간 한국 경제의 변화는 아주 긍정적입니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첫째,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함으로써 달러에 대한 환율 고정으로 인한 불안감을 제거했습니다. 둘째, 정부 예산도 건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금융위기를 겪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회복한 이유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은행 부문과 기업 부문에서 구조개혁을 빠르고 결단력 있게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96년에 몇몇 한국 사람들로부터 한국이 경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만일 한국에 위기가 닥친다면, 한국이 가장 먼저 벗어날 것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제가 제시한 이유는 지난 82년에도 한국은 남미와 비슷한 경제 위기를 겪었지만, 남미와 달리 한국은 6~7년 동안 단결해서 경제에 매진한 결과 90년대 초 호황을 맞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한국 국민들이 단결해서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은 그전에 보여주었던 것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바가 아닙니다. - 당시에 IMF가 아시아 경제체질에 맞지 않는 서구적 경제 시스템을 한국에 강제로 적용하려고 한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IMF가 제시한 처방은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살리고, 기업지배구조를 ??求쨉?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시스템을 강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자를 보며) 당신과 제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한 것이 똑같지 않습니까. 경제에도 올바른 정책이란 마찬가지입니다. 그해 12월 3일 IMF는 한국 정부와 개혁 프로그램에 합의했고, 김대중 후보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IMF 프로그램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일부 재벌들이 부정적이었는데, 그들의 상당수는 이미 위기 이전인 97년초부터 거의 파산 상태에 있었습니다. - 지금 한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가가 폭락하고, 경기가 하강하는 등 여러가지로 5년전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당시와 지금의 한국 경제를 비교해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5년 사이에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환율이 재조정되고, 원화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은행이 5년전보다 건실해졌고, 구조적으로 안정됐습니다. 한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5%의 성장을 유지하지 않고 있습니까. 미국 경제의 둔화에 비교하면 행복한 일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허약하지 않고 강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97년과 올해 사이에 한가지 부정적인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97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고, 긍정적인 요소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미국과 세계경제가 둔화하고 있고, 부정적 요소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 지난번 금융위기는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졌고, 브라질과 터키에서 선거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두달 후에 있을 한국 대선이 경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봅니까. ▦한국은 브라질과 터키와 두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은 터키나 브라질에 비해 대외부채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이 넉넉합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두 나라보다 안전합니다. 둘째,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앞으로 경제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지난 5년간의 정책 기조에 큰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인들은 정책 사안을 놓고 100% 의견 일치를 보기는 어렵지만, 경제정책의 관점에서 한국의 대선 후보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접근을 할 것으로 봅니다. - 한국 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한국 정부와 사회가 경제 개혁을 훌륭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한국의 외환 위기는 대선 직전에 진행돼 선거 2주전인 12월 3일에 IMF와의 합의가 체결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시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거 직후 한국 정부는 은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IMF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정부와 기업인, 노동자의 2자를 묶어 노동구조를 개혁하고, 파업 방지를 위한 대화장치를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위기를 맞아 경제개혁을 뒷바침하고, 성공시킨 것은 아주 상징적인 일입니다. 국민들이 보관하고 있던 금을 모아 빚을 갚으라고 정부에 가져다 준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지요. - 금융부문에서 더 개혁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뱅킹 시스템도 업그레이드되고, 국제경쟁력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 은행이 한국 시장에 접근하는데 아직도 애로사항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금융부분의 개혁과 선진화는 앞으로도 계속 추진해야 할 부문입니다. - 한국 경제의 소비 과열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이 있습니다. 중앙은행과 정부 사이에 금리인상 논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통화정책에 대해 조언해줄 것이 있습니까. ▦저는 특정 국가에서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금리논쟁을 벌일 때 조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웃음) 어느나라에서도 중앙은행과 재무부 사이에 금리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한쪽에는 소비자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비자 대출이 물가목표를 넘어선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IMF에 있을 때 들은 얘긴데, 어느나라에서나 중앙은행 사람들이 재정정책을 비판하고, 재무부 관리들이 금리정책을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 최근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경제특구를 설립하는등 엄청나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북한이 특정 구역을 설정해 경제를 개방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정치적 마찰을 줄이기 위해 특구를 설정했는데, 5~6년전 같으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북한의 발전이 아주 느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최근 한국과 일본과의 협상등을 볼때 일단 긍정적인 ∮牡?하고 있다고 봅니다. - 일본의 금융시스템 붕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IMF는 일본에 여러차례에 걸쳐 금융개혁을 요구했는데,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 일본을 걱정하고,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일본 정부에 은행 부실을 빨리, 그리고 근본적으로 정리하라고 무던히도 요구를 해왔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금융위기는 기업 부실이 은행에 전가되고, 은행부실이 다시 기업 부실로 전가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일본은 최근에 대단히 놀라운 은행 부실처리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중앙은행(BOJ)이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은행의 주식을 사야 하는데, 그것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쉬운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일본은 2위 경제대국으로 부유한 나라이지만, 지난 10여년동안 저성장을 해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잠재성장률 이하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미국의 경기둔화가 2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 미국경제가 완전하게 회복될 것으로 봅니까. ▦미국 경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난 90년대 중반에 이뤘던 4~5%대의 성장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제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성장은 이뤄나갈 것으로 봅니다. 주가 폭락, 정보통신 산업 붕괴 등의 요인이 미국 경제의 정상적인 성장을 어렵게 하고, 경기 회복이 아주 느린 속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91~92년을 돌이켜보면 당시 미국 경제는 신용경색이 심했고, 더 이상 성장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경제가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미국 경제는 3ㆍ4분기와 4ㆍ4분기에 3% 정도의 완만한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경기침체도 아니며, 동시에 빠른 회복도 아닙니다. 지금 미국 경제에는 여러가지 불확실성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내년 1ㆍ4분기와 3ㆍ4분기 사이에 불확실성이 거의 제거될 것으로 보는데, 그 이후에는 정상적인 성장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 (97년 11월 21일자 서울경제 기사를 보여주며) 한국 경제를 구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입국해서 한국 정부의 고위관료를 만났을 때 느낌이 어떠했습니까. ▦그때 한국에 들어가서 임창렬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그리고 나의 오랜 1맛?박영철씨(당시 금융연구원장) 등을 만나보았습니다. 한국정부와 공식 협상을 벌이기 며칠 전에 한국 상황을 체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한국 관리들은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실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IMF 프로그램을 수용하지 않으면 더 어려워진다는 점을 설득했지요. 제가 며칠후 한국에서 나올 때 경제 상황은 더 어려워 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관리들과의 협상은 아주 어렵게 진행됐지만, 결국 그들은 명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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